‘세월호 엄마들’의 연극 무대 3년 반···“그냥 더 멋지게 살고 싶을 때도 있어요”[리뷰]
연극 무대에 오르는 배우들은 저마다의 욕심을 품는다. 비중 있는 역할을 맡고 있는 욕심도, 완벽한 연기를 펼쳐보이고 싶은 욕심도 있다. 때론 막이 오르기 전 도망치고 싶은 두려움도 찾아온다. 배우가 누구이든 상관없다.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엄마들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내달 5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장기자랑>은 연극 배우가 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엄마들의 이야기다. 세월호 희생자 및 생존자 학생들의 엄마들로 구성된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이 동명의 연극 <장기자랑>을 만들고, 연습하고, 무대에 오르는 약 3년 반 동안의 과정을 담았다.
연극은 ‘우연하게’ 시작됐다. 참사 이듬해인 2015년 엄마들은 바리스타 수업을 들었다. 심리 치유의 일환이었다. 수업이 다 끝나갈 즈음 사람들은 다시 걱정했다. 커피를 다 배우면 엄마들이 집 밖에 나오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누군가 연극을 제안했다. “그래, 그것도 재밌겠네.” 별생각 없이 엄마들이 한 대답은 곧장 ‘세월호 엄마들이 연극을 하고 싶어 한다’는 전화로 이어졌다. 극단 걸판 출신 김태현 감독이 한달음에 달려갔고, 엄마들은 어느 새 200회 넘게 무대에 오른 베테랑 배우가 됐다.
연극 <장기자랑>은 극단의 세 번째 작품이자 첫 번째 창작극이다. 제주 수학여행을 앞둔 고2 학생들이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과정을 그린다. 참사로 희생된 아이들의 실제 특징, 못다 이룬 꿈은 연극으로 다시 태어났다. 연기는 엄마들이 자신의 딸, 아들이 되어보는 시간이면서 이들을 기억하는 방법이다.
다큐멘터리 속 엄마들의 모습은 사회가 규정한 ‘피해자다움’과는 거리가 멀다. 먼저 떠나보낸 자녀들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훔치다가도 원하는 배역을 맡지 못해 토라지고, 서로 갈등한다. 어린 시절 성악가를 꿈꿨지만 집안 형편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영만 엄마 이미경씨의 말은 피해자의 모습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그냥 나는 더 멋지게 살고 싶을 때도 있어요.”
연출을 맡은 이소현 감독은 2019년 일본 NHK 방송의 세월호 다큐멘터리 스태프로 일하다 극단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자원봉사로 연극 홍보 영상을 찍던 이 감독은 배역 문제로 속상해하거나 갈등하는 등 솔직한 엄마들의 모습을 보고 이를 다큐멘터리로 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3년 반에 걸쳐 <장기자랑>을 완성했다.
이 감독은 지난달 24일 서울 용산구의 한 영화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제가 연극 <장기자랑>을 처음 봤을 때의 감동을 더 많은 분들에게 전달해드리고 싶다”며 “이 과정에서 시민들에게 우리 아이들을 기억해달라는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극단은 오는 4월 엄마들의 실제 삶을 녹인 다섯 번째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태현 감독은 세월호 참사 10주기인 내년에는 “지금까지 해 온 5개 작품을 담담하게 한 편 한 편 꺼내보이면서 관객에게 대화를 걸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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