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일파만파, 2500명의 일자리가 사라진다
지난해 11월 3일 MBN이 "업무정지 6개월 등 방송통신위원회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이 났다. 만약 MBN이 고등법원에 항소하지 않았다면 일시 중단됐던 업무정지 처분의 효력이 살아났을 것이고, 2023년 3월쯤 그러니까 바로 지금은 방송이 사라져 있을 시점이다.
MBN 방송이 6개월간 중단되었다면 현재 외주제작 중인 22개의 프로그램, 그리고 이를 제작하는 30여 개의 제작사도 모두 '업무정지'되었을 것이다. 30여 곳의 제작사엔 작가, PD, 직접 인력 등 400여 명의 제작진이 근무 중이다. 포스트 프로덕션인 촬영, 종편, 그래픽, 음향, 무대 인력 등 제작 참여 인원까지 합치면 2500여 명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다.
제작인력들의 삶을 살펴보면 방송이라는 꿈을 갖고 지방에서 상경한 20대 청춘의 삶, 결혼을 앞둔 예비 부부의 삶, 아빠, 엄마로서 아이들을 책임져야 할 삶 등 수많은 삶의 이야기들이 자리 잡고 있다. 방송정지는 이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이다. 한 제작사 대표는 방송을 배우려고 갓 상경한 20대 스태프에게 "다시 방을 빼고 지방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라는 질문을 받고 막막했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
일자리란 무엇인가? 벌이가 되는 일을 하는 곳이다. 책임은 맡아서 행해야 할 의무나 임무를 뜻한다. 일자리와 책임 안에서 방송사와 제작사 관계가 형성되고, 제작사와 이어진 창작자들까지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조그만 틈만 벌어지더라도 이 관계는 끊어지게 된다. 이 특수한 관계성을 바라보아야 미디어 생태계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MBN의 업무정지 처분은 단순히 MBN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제작사와 창작자 모두에게 "책임과 일자리에 대해 더 이상 의무 없음" "전 인원 6개월간 해고"라는 판결을 내리는 것과 같다. 창작자의 촘촘한 연결고리가 일순간에 끊기는 것이다.
지금까지 제작사와 창작자들은 '나는 자연인이다'(2012년 방송 시작), '알토란'(2014년 방송 시작), '엄지의 제왕'(2013년 방송 시작) 등 대표적 장수 프로그램과 킬러 콘텐츠를 제작·진행하며 방송사와 함께하고 있다.
과거엔 프로그램의 지적재산권(IP·Intellectual Property)을 방송사가 독점하는 것이 업계의 불문율이었다. 하지만, MBN은 이 관행을 깨고 콘텐츠의 2차 가치를 제작사와 공유하고 있다. '돌싱글즈' '고딩엄빠' '그리스 로마신화 시즌 2' 등 인기 프로그램의 지적재산권도 마찬가지다. 여기엔 MBN의 사내 임원급인 제작본부장이 주축이 되어 개최하는 '외주상생위원회' 덕이 크다. 외주제작사의 제작 환경 개선으로 방송산업 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
6개월의 방송정지가 MBN에 막대한 손해를 가져다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900만가구의 시청권이 박탈되고, 연간 방송 매출의 70%인 1500억원이 사라질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업무정지가 채널 폐업과도 같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과거 MBN의 잘못에 대한 책임은 마땅히 져야 하고, 처분 또한 사회적으로 합리적인 절차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다만, 이 결과가 그저 묵묵히 일하는 이들에게 전가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허주민 전 한국방송영상제작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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