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의 창] 각자의 뽕을 찾아서

2023. 3. 3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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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 프로듀서 250이 찍은
다큐 '뽕을 찾아서'를 본 적 있나
촌스러움을 쿨하게 인정하는
그걸 개성으로 육화해 내는
그러나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혹시 이런 유행어를 들어보았는가? 상대가 어떤 질문을 던지든 귀에 꽂고 있는 이어폰을 빼는 시늉을 하면서 "하입보이요"라고 답하는 것이다.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면 당신은 트렌드에 기민한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나아가 '하입보이'가 무엇인지조차 모른다면 동시대 청년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감각에 약간의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닌지 점검해봐야 한다. '하입보이(Hype Boy)'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뉴진스의 노래로 250(이오공)이라는 프로듀서가 작곡했다. 그는 뉴진스의 앨범을 만든 메인 프로듀서다.

어느 날 친구가 내게 말했다. "뽕을 찾아서 봤어?" 나는 그 말을 뽕을 찾아 봤느냐는 말로 알아들었고, 곧바로 이렇게 되물었다. "뽕을 왜 찾아?" 대관절 뽕을 왜 찾아야 하는지 몰랐고, 뽕의 의미가 뽕나무 잎인지 뽕짝인지도 알 수 없었다.

친구는 곧바로 '뽕을 찾아서'라는 제목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뉴진스의 프로듀서 250이 뽕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니며 찍은 로드무비 형식의 다큐였다. 그가 지방의 축제 현장과 재래시장,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뽕을 찾아 길바닥을 헤매고 다니는 장면은 나에게 이런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다큐가 아니라 코미디인가?' 그러나 영상을 보면 볼수록 나는 그의 진지함에 매료되었고, '도대체 뽕이 무엇이길래 한 사람의 인생에 이토록 깊숙이 들어온 것일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결국 뽕을 찾아다니는 7년의 여정 끝에 250은 정규앨범 '뽕'을 발매했고, 한국대중음악상에서 4관왕을 차지했으며 올해의 음악인이 되었다.

약간만 솔직해져보자. 나는 250의 앨범을 듣고 그가 찍은 영상을 보기 전엔 뽕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대중음악의 역사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2020년대에 뽕이 다시 인기를 끌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다가 뽕짝이 크게 흘러나올 때면 눈살을 찌푸리기까지 했다. 어쩐지 주변 풍경이 '후지게' 보이는 기분이 들어서였다. 이렇듯 뽕짝의 부활은 다수가 손사래 치는 일이었을 것이다. 250이라고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가 어떻게 뽕에 대해 깊은 애정과 확신을 가질 수 있었는지 궁금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말했다. "나는 촌스러운 사람이니까 마음껏 촌스러워도 되겠구나" 싶었다고.

조금만 더 솔직해져보자. 자신을 촌스러운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만일 그런 말을 잘만 하고 다니는 사람이 있더라도 마음껏 촌스러워도 된다고 안심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촌스러움은 곧 자기 자신이 된다는 뜻이라는 걸 알기가 힘들뿐더러, 촌스러움조차 고유한 개성이라는 걸 깨닫기 위해선 정말 많은 내적 훈련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엔 남의 눈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MZ세대의 끄트머리에 속하면서도 그런 자세로 살게 될 때가 있다. 그런 태도의 기저엔 집단이 가리키는 방향을 거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깔려 있다. 새로운 시도를 망설이는 것이다. 그러나 2020년대엔 그런 태도를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더군다나 K-문화가 세계에서 주목받는 때라면 더더욱 그러해야 한다.

'뽕을 찾아서'엔 이런 장면이 나온다. 뽕을 찾아 지방 축제장에 간 250은 다소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운 행사 분위기를 접한 뒤 고심 끝에 이렇게 말한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 말을 듣고서 나는 웃음이 터졌다. 이런 태도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일이든 기꺼이 뛰어들되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않는 것. 판단이 보류된 영역에서 거품을 보글보글 일으키며 발효된 생각들이 언젠가 놀라운 창작물로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서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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