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서귀포시장 “제주4·3 왜곡·폄훼 현수막 강제 철거”

임성준 2023. 3. 3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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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 명예 훼손한 불법 현수막”

제주4·3 역사의 진실을 왜곡·폄훼해 유족 등에게 상처를 준 현수막이 강제 철거된다.

강병삼 제주시장과 이종우 서귀포시장은 30일 긴급 브리핑을 통해 “적법한 절차에 의해 신속한 철거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극우 정당과 단체 등이 도심 곳곳에 게시한 ‘제주 4·3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여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라는 현수막을 불법으로 판단했다.

양 행정시장은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을 담은 정당 현수막이 아닌, 정당의 표현의 자유를 넘어 4·3특별법을 정면으로 위반해 4·3 유족의 명예를 극심하게 훼손하는 불법 현수막”이라며 이 같이 말했다.

양 시장은 “절차나 법률적 검토를 핑계 삼아 판단을 지체한 것도, 그 사이에 ‘유족의 아픔을 행정보다 더 고민하던’ 시민이 먼저 행동하게 한 것에 대해 사과한다”라며 “비록 결정은 늦어졌지만, 단호하고 선명한 판단으로 이 자리에 섰다. 망설이지 않겠다. 주저하지 않겠다. 확고한 신념으로 도민을 마주보며, 4·3 진실을 왜곡하고 있는 증오의 말들을 신속하게 거둬 내겠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행정의 철거의지를 믿고, 현수막을 자력으로 훼손하는 일을 절대 삼가해 주기 바란다”라며 “진실을 세우는 일도, 시민의 걱정을 잠재우는 일도, 4·3 영령의 영면을 돕는 일도 시가 앞장서겠다”라고 역설했다.

앞서 강 시장은 제주도의회 4·3특별위원회의 긴급 현안 질의에서 “내부적인 법률 검토와 외부 고문의 법률 검토를 마쳤으며 4·3 왜곡 현수막을 철거하는 방향으로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제주시 법률 검토 결과 ‘정당의 정책은 국민적 이익을 위해 정당이 취하는 방향을 의미하며 정치적 현안은 찬반의 논의 가능성이 있는 내용을 뜻하지만, 해당 현수막 내용은 국가가 정한 제주4·3특별법 정의에 반하는 허위 사실 그 자체이므로 정당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이라고 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나왔다.

명백히 현행 4·3특별법을 위반한 것까지 정당 활동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현행 4·3특별법에는 ‘누구든지 공공연하게 희생자나 유족을 비방할 목적으로 제주4·3사건의 진상조사 결과 및 제주4·3사건에 관한 허위의 사실을 유포해 희생자, 유족 또는 유족회 등 제주4·3사건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시는 또 ‘통상적인 정당 활동에 해당한다’고 해석한 제주도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정당법상에 따른 해석일 뿐 그 외 제주4·3특별법 등의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해석 권한이 없다’는 구두 답변을 얻었다. 즉 선관위는 정당법 외 다른 법률 위반에 관해서는 판단한 바 없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제주시는 4·3 왜곡 현수막의 경우 허위 내용을 적시했기 때문에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옥외광고물법)상 보호받을 수 있는 현수막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옥외광고물법에 따라 정당은 정당법에 따른 통상적인 정당 활동으로 보장되는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내용의 현수막이라면 수량, 게시 장소의 제한을 받지 않고 설치할 수 있다.

우리공화당, 자유당, 자유민주당, 자유통일당 등 지난 21일 ‘제주4·3사건은 대한민국 건국을 반대하여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제주 곳곳에 걸었다.

이들 정당 등은 이 같은 내용의 현수막을 총 80여개 걸었다고 주장했지만, 제주도 조사에서는 59개로 파악됐다.

이 현수막은 제75주년 제주4·3희생자 추념식을 앞두고 4·3평화공원 인근에도 등장해 유족들의 공분을 샀다.

현수막이 내걸린 뒤 도민 사회에서는 “내용이 정부의 제주4·3진상조사보고서 등 정부와 학계가 인정하는 제주4·3의 진상을 전면 부정하고 4·3을 북한과 연계해 이념적 공세를 펴려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강하게 일었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해당 현수막 위에 ‘진실을 왜곡하는 낡은 색깔론, 그 입 다물라’는 대응 현수막을 걸었으며, 일부 도민은 현수막을 훼손한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송재호 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시갑)은 최근 제주4·3사건과 희생자, 유족, 관련 단체를 모욕 비방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경우 처벌할 수 있도록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송 의원이 대표 발의한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은 4·3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것만으로도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13조에 ‘제주4·3사건의 진상조사 결과를 부인 또는 왜곡하거나’라는 내용이 추가됐다. 또 31조 벌칙조항에도 ‘희생자, 유족 또는 유족회 등 제주 4·3사건 관련 단체의 명예를 훼손할 경우 최대 5년 이하의 징역,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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