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보험·카드 지급결제 허용 논의에… 한은 “결제 리스크 커져” 반대
한국은행 부정적 입장 표명에 사실상 어려워
스몰라이센스 허용 방안도 건전성 이슈 제기
은행 경쟁 촉진·금융 안정 사이에서 균형 찾기
은행권의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증권·보험·카드 등 비은행권에도 지급결제 업무를 허용하자는 논의에 제동이 걸렸다. 지급결제망을 총괄하는 한국은행이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으로 금융시장의 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은행의 고유업무인 지급결제를 비은행권에까지 허용하면 결제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비은행권은 지급결제가 허용되면 은행권 경쟁을 촉진하고 소비자 편익이 향상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한은의 입장을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 당국은 또다른 은행 경쟁 촉진 방안인 스몰라이센스 허용 역시 은행권의 경쟁 촉진, 소비자 후생 증대보다는 건전성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하기로 했다.
30일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전일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주재로 열린 제2차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에서는 비은행권의 지급결제 업무 허용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참석자들은 증권·보험·카드 등 비은행 금융사도 은행처럼 입출금 계좌를 개설하는 방안에 대해 은행권 경쟁 촉진, 소비자 편익, 금융 안정성 등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을 진행했다.
◇ 한은 “비은행 지급결제 업무 허용, 부정적”
한은은 이 자리에서 금융시장의 불안이 확대되며 결제리스크 관리를 한층 강화해야 하는 시점에서 비은행권의 지급결제 업무 허용 논의를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은은 “전 세계에서 엄격한 결제리스크 관리가 담보되지 않은 채 비은행권에 소액결제시스템 참가를 전면 허용한 사례는 찾기 어렵다”라며 “비은행권의 소액결제시스템 참가 확대시 고객이 체감하는 지급서비스 편의 증진 효과는 미미한 반면, 지급결제시스템 안전성은 은행의 대행결제 금액 급증, 디지털 런 발생 위험 증대 등에 따라 큰 폭 저하될 것으로 우려된다”라고 했다.
아울러 한은은 비은행권의 지급결제 업무 허용은 은행과의 규제 차익이 발생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한은은 “비은행권의 소액결제시스템 참가 허용은 수신 및 지급결제에 특화된 사실상 내로우뱅킹을 도입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 보다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한은은 “비은행권은 동일업무를 수행함에도 은행과 달리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등 은행법에 따른 건전성 규제는 물론 금융소비자보호법 등의 적용이 배제되고 예금자보호법 적용도 받지 않음에 따라 규제차익 발생이 우려된다”라며 “비은행권의 소액결제시스템 참가 허용은 최소한 주요국과 같은 결제리스크 관리제도의 근본적 개편을 전제로 금융안정 및 금융소비자 보호 등의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돼야 하는 사안이다”라고 덧붙였다.
반면 금융투자·보험·카드·핀테크 등 업권별 협회는 비은행권의 지급결제 업무 허용이 소비자 후생 증진 효과가 있다고 주장했다. 금융투자협회는 증권사의 법인지급결제 허용 시 기업이 증권종합계좌에서 여유자금 운용 및 거래대금·운영자금 입출금 등 기업활동에 필요한 종합금융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 강조했다.
보험연구원은 보험업의 지급결제업무 허용은 리스크 관리라는 보험업 특성을 살린 결제계좌 기반 신사업 구현에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소비자 효용을 증진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신금융협회는 카드사 계좌기반 지급결제 업무가 허용된다면 카드사만 가지고 있는 양면시장(회원과 가맹점) 강점을 잘 활용해 다양한 디지털 금융·소비·생활편의 서비스 제공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지급결제망을 총괄하는 한은이 부정적 입장을 밝힌 만큼 비은행권의 지급결제 업무 허용은 사실상 어려울 전망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커지는 상황에서 효율성과 안정성간 상충관계가 있을 시 금융 당국은 안정성에 무게를 둘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한은이 지급결제 최종 대부자로서 관리 역할을 하기 때문에 (비은행권 지급결제 업무 허용에) 협조하기는 상당히 어렵다는 것 자체는 사실이다”라고 했다.
김소영 부위원장 역시 비은행권의 지급결제 업무 허용의 전제로 ‘금융안정’을 제시한 만큼 이 방안은 한은의 문턱을 넘기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 부위원장은 “비은행권의 지급결제 문제는 효율성과 안정성간 상충관계를 충분히 감안할 필요가 있는데, 소비자의 편익과 지급결제리스크 등을 단순히 비교형량해 판단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라면서 “‘동일기능-동일리스크-동일 규제’의 관점에서 지급결제리스크 관리 등 필수적인 금융안정 수준을 전제로, 충분한 소비자 편익 증진 효과 등을 살펴보면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 스몰라이센스 도입…건전성 취약한 은행 등장할 수 있어
은행권 스몰라이센스 도입 논의 역시 속도를 내지 못했다. TF에서는 지급결제전문은행, 중소기업대출 전문은행 등 스몰라이센스를 취득해 들어온 은행의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다. 스몰라이센스는 인허가 단위를 잘게 쪼개 자본금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기업도 은행 핵심 업무에 대한 사업을 할 수 있는 제도다.
금융연구원은 ‘스몰라이센스에 대한 국내외 사례 및 시사점’에 대한 연구조사 결과를 공유하며 “지급결제전문은행의 경우에는 소비자 편익은 크지 않으나 수익성 확보 곤란에 따른 건전성 문제, 수신경쟁 강화에 따른 리스크 증대 등이 우려된다”라고 지적했다. 또, 연구원은 “중소기업대출 전문은행의 경우 은행 자산의 경기순응성이 높아져 경기침체시 은행 부실화 우려가 커지고 중소기업 신용평가에 대한 어려움 등으로 수익 창출 및 건전성 유지가 힘들 수 있다”라고 분석했다.
김 부위원장은 스몰라이센스의 도입 여부에 대해 “금융소비자 편익 증대와 경쟁촉진 뿐 아니라 금융안정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필요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TF에서 논의한 스몰라이센스의 장·단점과 경쟁에 미치는 효과, 실효성 등을 바탕으로 스몰라이센스 도입 여부와 도입방법 등에 대해 국민과 금융권 등 각계의 목소리를 듣고 공감대를 형성해나갈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결국 은행권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비은행권 지급결제 업무 허용, 스몰라이센스 도입 논의 모두 금융시장 불안에 따른 암초를 만난 셈이다. 금융위는 이에 대한 논의를 지속해 6월 말까지 결론을 낼 계획이다.
금융위는 다음 달 12일에는 제5차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TF 실무작업반 회의를 개최하고 사회공헌 활성화 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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