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황사의 계절…중국 '사막 영웅'의 절규

정영태 기자 2023. 3. 30.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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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푸른 숲 가꿨지만 "물이 없다" 무릎 꿇고 호소

중국 서북부와 몽골 지역에서 불어오는 모래폭풍 황사가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중국 기상당국의 분석으로는 예년보다 더 자주 황사가 발생할 걸로 예상됩니다. 북부 지역의 올 초봄이 평균 기온보다 높았던 탓에 눈이 적게 오거나 내린 눈도 빨리 녹았습니다. 지표면을 덮어 한동안 모래먼지를 잡아두고 있어줘야 할 눈이 사라진 겁니다. 게다가 강수량도 적었고, 최근 강한 바람까지 더해지면서 모래폭풍이 일어날 조건이 갖춰졌습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서북부의 사막에 전 재산을 들여 나무를 심고 푸른 숲을 가꿨던 '사막 영웅'의 안타까운 사연이 알려져 공분이 일고 있습니다. 지난 2003년부터 닝샤 자치구 마오우쑤 사막에 나무를 심어온 올해 64살의 쑨궈여우(孙国友, 손국우) 씨 이야깁니다.

개혁개방으로 번 돈 19억 원 털어 가꾼 사막의 숲

쑨 씨는 개혁개방이 한창이던 지난 1990년대에 건설 사업과 부동산 사업 등으로 성공하면서 큰돈을 벌었다고 합니다. 원래 쓰촨성이 고향인 쑨 씨는 닝샤에서 첫 공사 사업으로 돈을 벌었고, 부인도 닝샤에서 만나 이 지역에 대한 애착을 갖고 제2의 고향으로 여겼습니다. 지난 2003년 닝샤의 사막지대에서 도로 건설 공사를 하던 중 개울이 흐르는 수원을 우연히 발견했습니다. 이를 잘 활용해 물길 만들기, 이른바 관개 수로를 만들면 황량한 사막지대에 나무를 심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막 지대의 땅 667㏊(헥타르)를 임차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모래폭풍을 보고 자란 아내와 딸에게 자신의 고향 쓰촨성 같은 푸른 숲과 맑은 물을 보여주고 싶다는 바람이 있었다고 쑨 씨의 딸 유에씨가 말했습니다. 사막에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먼저 수로를 만들고 풀씨부터 뿌린 뒤, 관목과 나무를 차차 키워나간 세월이 20년, 들어간 돈이 1천만 위안(한화 약 19억 원)에 달했습니다. 이런 노력이 알려지면서 중국 매체들이 여러 차례 '사막에 푸른 숲을 가꾼 영웅'으로 칭송하기도 했습니다. 사막의 태양 아래서 20년 세월을 보내며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이 훈장처럼 여겨졌습니다.

국영기업 탄광 개발 시작되면서 말라버린 수로

하지만 지난 2008년 한 국영 에너지그룹 산하 광산업체가 쑨 씨가 가꾼 숲 주변에서 석탄을 채굴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하수가 고갈됐고 숲에 물을 공급하는 관개 수로도 파괴된 겁니다. 광산업체는 "하수처리장을 만들어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해주겠다"라고 말했지만 속임수나 다름없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탄광의 하수처리장을 거쳤다는 물도 오폐수에 가까울 정도로 수질이 떨어졌던 겁니다. 게다가 염분까지 많이 포함돼 있어 오히려 나무들이 말라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문제는 중국 관영 CCTV에까지 보도됐고, 지역 법원도 허가 없이 삼림을 파괴한 것에 대해 해당 탄광이 쑨 씨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중국 매체 중에서 힘이 가장 세다는 관영 CCTV의 고발 보도와 법원 판결에도 광산업체의 횡포는 계속돼 10년이 넘도록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광산업체가 법 위반에 대해 벌금만 내는 식으로 버텨온 겁니다. 

20년 공들여 가꾼 사막의 숲 1/3 고사…무릎 꿇은 영웅

결국 지하수가 아닌 하늘에서 내리는 비에만 의존해야 했는데, 원래 사막 지역이다 보니 강수량이 충분할 수가 없습니다. 이미 1/3가량의 수목이 고사했습니다. 할 수 없이 생수통에 물을 담아 나르고, 물을 사서 트럭으로 공급하기도 해 봤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비싼 물 공급 비용을 감당할 수도 없었고 공급되는 수량도 넓은 조림지 전체에 물을 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던 겁니다. 광산업체는 지난 3월 27일까지 수로를 복원시키겠다고 마지막 약속을 했지만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음 날인 3월 28일 쑨 씨는 업체를 찾아가 책임자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한 푼의 지원금도 받지 않고 자비로 20년간 가꾼 숲이 죽어가고 있다"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라고 절규한 겁니다. 가족들이 이 상황을 휴대전화로 촬영해 SNS에 올렸고 해당 영상이 예상외로 빠르게 퍼지며 큰 화제가 됐습니다. 10년 넘게 버티기로 일관하는 광산업체는 물론 문제 해결 의지가 없는 당국의 무성의한 태도에도 비난이 빗발치고 있습니다.

광산업체는 나무에 공급할 수 있는 정도 수질의 물을 공급하려면 비용이 많이 든다고 여전히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처음 탄광 개발을 할 때부터 쑨 씨에게 약속한 것은 "삼림 녹화에 쓸 수 있는 물을 공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쑨 씨의 사연을 접한 중국 젊은이들은 사막에 나무를 심어 푸른 숲을 가꾸고 황사를 막는 것과 석탄 채굴로 돈을 더 버는 것 사이에 무엇이 더 나라에 중요한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좌절 일보직전의 꿈'…한 사람의 사연이 아닌 중국이 마주한 현실

개혁개방 시기에 사업으로 번 돈을 20년간 사막에 푸른 숲을 가꾸는 데 쓴 쑨 씨의 사연은 그저 한 사람의 사연으로만 여겨지지 않습니다. 개혁개방 이후 세계를 놀라게 한 빠른 경제성장으로 한 때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불렸습니다. 하지만 극심한 환경 오염과 빈부 격차 같은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기에 지금은 이른바 '고품질 경제 발전'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전통적인 굴뚝 산업에서 탈피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선진국형 경제로 전환하려 하고 있는 겁니다. 저탄소 녹색성장도 빠지지 않는 주제로, 봄이면 찾아오는 모래폭풍과 황사, 극심한 대기오염도 극복하고 있다고 세계에 자랑해왔습니다. 하지만 '딸에게 사막의 푸른 숲을 물려주겠다'는 쑨 씨의 20년 노력이 석탄 채굴 광산의 횡포에 가로막혀 좌절 일보 직전에 다다른 것은 현재 중국이 처한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초고속 경제 성장의 속도가 느려지며 지난해 경제 성장률이 3%에 그쳤습니다. 선진국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다고도 볼 수 있지만 7~8%를 쉽게 넘어섰던 과거에 비해 크게 낮아진 수치에다 14억 대국의 인구 감소까지 겹치며 중국의 성장이 정점을 찍고 내려오고 있다는 이른바 '피크 차이나'론이 대두된 지 오래됐습니다. 올해 경제 성장률 목표치도 사상 가장 낮은 수치인 5% 안팎을 제시하면서 경기 살리기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각 지방정부별로 기업 실적 확대를 통한 지역 경제 성장 제고를 위해선 무엇이든 하겠다는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하이난성에선 '가급적 기업가들을 체포, 기소, 실형 선고하지 말라'는 지침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쑨 씨와 광산업체 간의 물 분쟁이 과연 어떤 식으로 마무리될지 궁금합니다. 나라의 벗(国友)이라는 그의 이름에 눈길이 갔는데, 나라가 그의 오랜 꿈이 좌절되지 않게 도와줄 진정한 벗이 될 수 있을지 지켜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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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바이두)

정영태 기자jyta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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