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지구살이 80년…아직도 우리들의 '순수의 아이콘'[북적book적]

2023. 3. 30.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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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가 직접 그린 어린왕자. [위즈덤하우스 제공]

[헤럴드경제=신소연 기자]“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란다”

옥색과 붉은색으로 된 롱코트에 장미 문양의 코르사주, 검은색 장화로 멋스럽게 차려입은 금발의 사내아이. 어느 때는 목도리를 휘날리며, 또 어느 때는 단정하게 나비 넥타이를 매고 우주를 여행하는 어린왕자가 내달 6일이면 우리 곁으로 온지 80년이 된다.

1943년 4월 6일 출간된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지금까지 500여 개의 언어와 방언으로 번역됐고, 2억 부 이상 발행되며 여전히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영원한 ‘순수의 아이콘’이 된 어린왕자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 떠나보자.

어린왕자의 뿌리는 '이카로스'?!

어린왕자는 아프리카 사막을 비행하던 중 사고로 사막에 떨어진 주인공이 우연히 '어린왕자'를 만나 펼쳐지는 이야기다. 생텍쥐페리가 지난 1940년 미국 망명 생활 중 집필한 이 책은 결국 그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어린왕자의 기원에 대해 얘기할 때 일부는 그리스의 신화에서 그 근거를 찾는 사람들이 많다. 생텍쥐페리는 '어린시절'이 자신의 고향이라고 말할 만큼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냈는데, 당시 '어린 앙투안'을 사로잡은 건 바로 비행이었다. 인간의 비행이 막 시작되던 시기다 보니 ‘하늘을 나는 인간’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았다. 어린시절의 꿈을 놓지 않았던 그는 결국 비행사가 된다.

신간 '어린왕자, 영원이 된 순간' 中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1935 [위즈덤하우스 제공]

어린왕자는 책 속에서 여섯 개의 소행성을 차례차례 방문하지만, 그가 비행기나 비행선을 타는 장면은 나오지 않는다. 철새 무리를 따라 이 별에서 저 별로 돌아다닐 뿐이다. 혹자는 어린왕자에게 원래 날개가 달려 있다 지운 게 아니냐, 혹은 원래 날개가 있었지만, 태양 가까이에 가서 떨어진 게 아니냐는 해석들이 있다. 왜냐하면 그가 출간 직전 1942년에 그린 어린왕자를 보면 날개가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은 아버지 다이달로스가 만들어 준 날개로 힘차게 날다 태양 가까이에 가서 날개가 타버린 이카로스의 신화를 연상시킨다. 사막에서 만난 여우와 ‘관계’에 대해 얘기할 때도 미궁에서 테세우스가 길을 잃지 않도록 건내준 실타래인 '아리아드네의 실'을 연상시키는 말을 하기도 한다.

어린왕자의 행성에 사는 장미는 그의 부인?!

어린왕자가 사는 소행성 ‘B-612’에는 아름다운 장미 한 송이가 있다. 혼자 자신의 소행성을 청소하거나 44번의 석양을 보면서 외로움과 우울감을 달래던 어린왕자에게 생긴 첫 생물이자 동반자이다. 하지만 어린왕자와 장미와의 관계는 그리 녹록치 않다. 원래 이 별의 출신도 아닌데다 자존심이 강하기 때문이다. 어린왕자 역시 관계 맺기가 서툴었다. 결국 어린왕자는 장미 때문에 여행을 시작한다.

소행성 B-612의 어린왕자가 그려진 표지 [위즈덤하우스 제공]

어린왕자와 장미의 관계는 생텍쥐페리와 그의 부인 콘수엘로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1930년대 초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난 그들은 한눈에 운명의 상대인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서로의 존재에 대해 기쁨을 느끼는 찰라의 순간을 제외하곤 늘 서로에게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사랑받는다는 사실, 그 무한한 보물을 포용하려고 하지만 결코 그 보물에게 기쁨을 줄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우울한 아이"로 묘사했고, 그런 분위기는 어린왕자에게서도 느껴진다.

하지만 어린왕자가 자신의 소행성으로 돌아가야 할 이유로 장미를 떠올렸듯, 자신이 마지막으로 돌아가야 할 곳은 그의 아내 콘수엘로 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1944년 7월 31일 지중해 상공에서 정찰 비행을 하다 실종됐고,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

여우·바오밥나무, 보편적 상징의 파괴

어린왕자가 사막에서 만난 여우는 다른 문학작품에서의 여우와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보통 우화에 등장하는 여우들은 아첨이나 거짓, 잔꾀를 부리며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만, 어린왕자가 만난 사막여우는 관계 맺기에 서툰 그에게 깊은 깨달음을 주는 '지혜의 상징'이다.

'길들여진다'는 말로 치환된 '관계 맺기'는 서로 필요해지는 것, 그래서 서로가 매우 특별해지는 것이라는 것을 나이 많은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담담히 말한다. 너의 발소리가 다른 발소리와 달리, 내 심장을 뛰게 하는 발소리가 될 때, 그 때야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것, 즉 관계 맺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여우는 그러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며 너의 시간을 쏟아 부은 장미에게 돌아가라고 조언한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자필 원고 [위즈덤하우스 제공]

큰 덩치의 바오밥나무는 우리나라의 당산나무처럼 나무가 있는 곳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사실 어린왕자에서는 작은 그의 소행성을 파괴하는 '절대악'으로 표현된다. 어린왕자가 매일 소행성을 청소하며 바오밥나무의 새싹을 뽑아내는 이유도 그 거대한 뿌리가 행성 깊숙히 박혀 행성을 파괴할 것 같아서다. 어린왕자에서의 바오밥나무는 지역의 상징이 되는 든든한 나무가 아니라 당시 유럽에 은밀히 퍼져나간 증오와 복수의 상징으로 쓰였다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참고서적]어린왕자, 영원이 된 순간/앙투안 드 생텍쥐페리·갈리마르 출판사 지음, 이세진 옮김/위즈덤하우스

생텍쥐페리의 문장들/신유진 엮음/마음산책

carrier@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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