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용인반도체 클러스터 명암…"세상에 이런 날벼락이 없네요" 3개 마을 사라져
기사내용 요약
이동읍 주민대책위 구성…정부에 이주대책 요구
'마피'(마이너스 피) 한숲시티 아파트는 수혜…집주인들 동탄행
[용인=뉴시스]신정훈 기자 =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어요. 3개 마을이 통째로 없어져 버려요."
29일 오후 2시 경기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행정복지센터 2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이동읍 주민대책위원회 창립총회'에 참가한 한 주민의 말이다.
이날 총회가 시작되기 1시간 전 부터 주민들은 복지센터 곳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침통한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정부에서 준 보상금으론 어디 가서 집을 구하기도 어렵다", "수 십 년을 살아온 터전인데 이제 어디서 살아야 하는지 막막하다."
대화의 대부분이 이전에 따른 대책 문제였다.
30여 분이 남았는데도 2층 대회의장은 300여 원주민들로 가득 찼다. 모인 원주민 대부분이 60~70대 노령층이었다. 입구에 놓인 테이블에는 대책위 창립을 위한 주민서명을 받고 있었다.
총회에 모인 원주민의 90% 이상이 시미리 주민이었다. 그럴수 밖에 없는 것이 정부가 발표한 반도체클러스터 예정지에 시미 1~3리 마을 전체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현재 반도체 클러스터 예정지에 속한 이동읍 가구수는 450세대. 이중 300세대가 시미리에 밀집돼 있다. 이들은 공사가 시작되기 전 모두 마을을 떠나야 한다.
이동읍 곳곳에 내걸린 반도체 클러스터 관련 현수막에도 이동읍 주민들의 복잡한 사연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사연은 이렇다. 지난 15일 정부의 반도체 클러스터 예정지 발표 후 일부 단체에서 '환영한다'는 현수막을 내걸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 자진 철거했다고 한다.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는 시미리 주민들의 절박한 마음이 이들 단체에 전달됐기 때문이다.
반대하는 주민들도 시미리 지역에만 '예정지 철회 현수막'을 내거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한다. 절박함에 서로를 배려하는 이동읍 주민들의 심경을 느낄수 있었다.
이동읍 행정복지센터의 한 관계자는 "사실 국가적으로나 이동읍 전체로 보면 분명 환영할 일이지만 수 십년을 살아온 고향을 떠날 시미리 주민들을 생각하면 마냥 즐거워 하기엔 부담이 컸을 것" 이라고 귀띔했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총회는 사회자의 모두 발언이 끝나자 정부를 비난하는 주민들의 성토와 이주대책을 걱정하는 말들로 메워졌다.
한 주민은 "일언반구도 없이 갑자기 지정해버리면 우리는 어떻게 살란 말인가.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어떻게 3개 마을을 통째로 없앴수 있냐"며 정부를 향해 분통을 터뜨렸다.
다른 주민도 "원삼에 SK하이닉스가 들어온다고 했을 땐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가 당해보니 너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주민은 "정부에서 발표할 때만 해도 남사읍만 언급됐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남사는 약 30%밖에 되지 않고 70%가량의 대부분이 이동읍이었다"며 "3년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되면 아무것도 못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다.
원주민들만의 문제도 아니었다. 이곳엔 꽤 많은 중소 규모의 공장들도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입구에서 서명을 받고 있는 공장관계자들이 대책위 관계자들에게 문의하는 모습도 간간히 눈에 띄었다.
한 제조업체 관계자는 “공장에 필요한 시설을 세우기 위해 얼마 전까지 시청에 문의까지 하고 세부 일정까지 잡았는데 갑자기 정부에서 예정지를 발표해 당황스럽다"며 "계속 이곳에서 사업을 할 수 있는지, 추가로 투자가 가능한지 고민스럽다"고 고개를 떨구었다.
반도체 예정지 전체 개발면적의 70%(521만㎡)이상이 이동읍이다. 개발행위허가 제한구역으로 지정되면 3년간 건축물의 신축이나 증개축, 토지형질변경, 벌채 및 식재 등이 제한된다.
분위기가 점점 과열되자 사회자와 총회 관계자들이 서둘러 진정시켰지만 성난 주민들의 분노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2시간이 가까이 진행된 총회는 추대 형식으로 조동식 시미1리 이장이 대책위원장을 맡고, 예정지에 포함된 덕성 사미 등 주민대표들이 부회장직을 수행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조동식 위원장은 "대책위가 가장 먼저해야 할 일은 주민들을 다독이고 불안해 하는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라며 "대책위를 구성한 만큼 주민들의 요구사항을 정부에 정확하게 전달해 반드시 관철시키는데 총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동읍과 달리 남사지역은 곳곳에 환영의 현수막을 걸고 고무된 분위기다. 남사읍은 이동읍과 달리 완장리와 창3리 등 2곳이 포함됐다.
다만 임야가 많은 완장리에 비해 주민들이 살고 있는 창3리는 정부 발표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동읍과 달리 일찌감치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창3리 주민들은 "처인성 등 역사적으로도 보존가치가 높은 마을이다. 집 마당을 나서면 개울에 맹꽁이, 가재 등이 서식하고 있는 청정지역"이라며 "정부와 대기업의 결탁으로 주민들이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에서 내쫓기게 생겼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창3리 주민들은 4월 3일부터 6일까지 용인시청 앞에서 반대시위를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수혜를 받은 곳도 있다. 남사읍에서 유일한 대단지 아파트(6800여가구)인 한숲시티다. 분양가가 3.3㎡당 1000만 원 수준으로 2018년 6월 입주 당시에는 마피(마이너스 프리미엄)가 붙을 만큼 관심밖의 아파트였다.
하지만 정부발표 후 상황은 급변했다. 84㎡규모의 아파트를 3억원에 내놨던 집주인들이 계약을 취소하거나, 매물을 거두어들이고 금액을 1억~1억5000만원올려 다시 매물로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한숲시티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수 백 만원이라도 이익이 남으면 위약금을 감수하는 편이 낫다는 분위기 팽배했었다"며 "이곳에서 아파트를 판 집주인 대부분이 화성 동탄으로 이주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귀뜸했다.
다른 부동산 관계자도 "2기 동탄신도시 개발과 맞물려 당시 이 지역이 동탄보다 시세가 조금 낮게 책정됐다. 당시 2기 동탄신도시도 유휴.기반시설이 많지는 않았지만 기존 신도시가 형성돼 있다 보니 여기보다 상권 등이 빠르게 자리잡았다"며 "그때 동탄 2신도시에 못 간 사람들이 이번에 여기서 아파트를 팔거나 전세를 놓고 동탄으로 옮기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용인시는 정부 발표 이후 부터 국가첨단산업단지 지원을 위한 추진단을 구성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인허가를 비롯한 각종 협의 절차의 신속 진행, 용수·전력 확보 방안, 도로 등의 인프라 확충 방안 등에 주력키로 했다.
용인시 관계자는 "반도체 클러스터 예정 후보지에 포함된 주민들의 이주 대책과 보상문제에 대해 정부에서도 적극 나설 줄 것으로 기대한다"며 "용인시도 원주민들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전달 하겠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gs5654@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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