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 발표 후폭풍] 10년이 넘어도 또렷한 아픔… 진짜 2차 가해, 누가 하고 있나?

유지선 기자 2023. 3. 30. 12:30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피해자는 평생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가해자는 기억하지 못하는 일도, 피해자에겐 바로 어제의 일처럼 또렷한 잔상으로 남게 된다.

협회는 지난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날 오후 서울 월드컵경기장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열어 징계 중인 축구인 100인에 대한 사면 조치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협회는 사면 조치 대상이 된 축구인 100인 명단을 공개해달란 요청에 "2차 가해로 보일 수 있다"라고 답했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베스트 일레븐)

피해자는 평생 가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가해자는 기억하지 못하는 일도, 피해자에겐 바로 어제의 일처럼 또렷한 잔상으로 남게 된다. 그런데 한국 축구를 대표하고 지탱해야 하는 대한축구협회(이하 협회)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사면 조치로 또다시 축구계에 상처를 내고 있다.

협회는 지난 28일 보도자료를 통해 이날 오후 서울 월드컵경기장 회의실에서 이사회를 열어 징계 중인 축구인 100인에 대한 사면 조치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각종 비위 행위로 징계를 받은 전·현직 선수, 지도자, 심판, 단체 임원 등이 사면 대상이 됐다. 여기에는 승부조작에 가담한 48명도 포함돼있다.

지난 2011년으로 되돌아가보자. K리그는 대규모 승부조작 사태가 발생해 한바탕 홍역을 앓았다. 프로 무대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검은 손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 채 승부조작에 가담한 것이다. 비단 한둘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려 50명 넘는 선수들이 연루된 대규모 스캔들로, K리그의 근간을 흔드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공정해야 할 스포츠 경기가 알고 보니 조작되고 있었던 셈이다.

참고로 한국프로축구연맹이 자진신고 기간까지 줬지만, 자진해서 승부조작 가담 사실을 밝힌 인원은 25명에 불과했다. 그때 그들은 이렇게 큰 죄를 저지르고도 정직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누군가는 이 사건 때문에 목숨도 잃었다. 순수한 마음으로 팀을 응원했던 팬은 물론이며, 축구계에 몸담고 있는 모두가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도 보기 흉한 흉터로 남아있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K리그는 개막전 역대 최다 관중 기록을 새로 쓰는 등 '봄 기운'이 만연하다. 그러나 단순히 '시간이 약'이 됐던 건 아니다. 당시 축구계는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해선 안 된다는 공감대를 형성했고, 승부조작에 연루된 인물들을 엄하게 처벌하고 선수들을 대상으로 매년 교육을 시행하는 등 재발 방지를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왔다.

협회의 사면 조치는 그동안 이어온 노력에 재를 뿌리는 처사다. 승부조작이 '시간이 흐르면 용서받을 수 있는 일'로 해석될 여지를 남겼기 때문이다. 축구계를 할퀴었던 최악의 사태를 협회가 직접 나서서 '10년 쯤 지나면 망각할 수 있는 일'로 무게를 덜어준 꼴이 됐다.

협회는 이번 사면 조치를 내린 배경에 대해 "올해 창립 9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해에는 FIFA 월드컵 10회 연속 진출 및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 진출을 달성했다. 빛나는 성과를 축하하고 새로운 도전을 위해 새 출발을 하는 시점에서, 축구계 대통합을 위한 조치를 고민해 내린 결정"이라고 구구절절 설명했다. "현장의 의견을 수렴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러나 정작 가장 큰 피해자였던 팬들은 그 '현장의 의견'에서 쏙 빠졌다. '누구'를 위한 대통합인지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협회는 사면 조치 대상이 된 축구인 100인 명단을 공개해달란 요청에 "2차 가해로 보일 수 있다"라고 답했다. 순수한 마음을 무시한 '가해자'들로 인해 과거 큰 상처를 입었던 팬들의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린다면, 사면 조치 대상자들 편에 서서 '2차 가해'란 표현을 써선 안 되지 않았을까?

협회는 자각할 필요가 있다. '내가 지지하는 팀은 안 그랬겠지', 혹은 '내가 응원하는 선수는 아닐거야'라는 믿음을 가졌던 팬들은 당시 사건을 맡았던 창원지검에서 시시각각 전해오는 구속 소식에 절망했었다. 그리고 이번 사면 조치는 그때 아픔을 다시금 끄집어 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그 2차 가해, 지금 누가 하고 있는가?

글=유지선 기자(jisun22811@soccerbest11.co.kr)
사진=대한축구협회, 한국프로축구연맹

축구 미디어 국가대표 - 베스트 일레븐 & 베스트 일레븐 닷컴
저작권자 ⓒ(주)베스트 일레븐.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www.besteleven.com

Copyright © 베스트일레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