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한 한국야구, 타락한 KBO 리그’ 10구단 체제가 낳은 폐해와 그 역설(逆說) [홍윤표의 휘뚜루마뚜루]
‘추락과 타락.’
최근 KBO 리그의 난맥상은 그 두 마디 단어로 요약할 수 있겠다.
승부 조작, 불법도박, 금지약물 복용, 병역 파동, 음주운전, 성 추문, 코로나 시국 방역 위반 따위의 온갖 사회악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복합 비리’의 온상이 바로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는 선전 구호로 시작한 한국프로야구가 될 줄이야 그 누가 알았으랴. 한탄이 절로 나온다.
연간 720경기, 10 구단 체제 확립을 이룬 2015년 이후 KBO 리그는 2017년 관중 840만여 명을 정점으로 코로나 직격탄을 얻어맞은 2020, 2021년을 뺀다손 치더라도 정상적으로 리그를 치른 지난해 관중이 600만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도 원기를 온전히 회복하지 못한 KBO 리그가 재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할 올 시즌에, 미처 출발도 하기 전에 여러 악재로 휘청거리고 있다.
안이하게 대처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었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A) 참사에 이은 롯데 투수 서준원의 미성년자 약취유인 혐의도 모자라, 개막을 코앞에 두고 불거진 KIA 타이거즈 구단 장정석 단장의 뒷돈 요구 의혹까지, 걷잡기 어려운 사태가 잇따르고 있다.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여러 진단이 가능하겠으나, 리틀 야구부터 성인 프로야구까지 편법이 판을 치도록 내버려 둔 야구판(야구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렵지 않게 문제점을 끄집어낼 수 있다.
잠시 시계를 되돌려보자. 1991년,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 선수들이 사상 처음으로 대표선수를 선발해 친선경기를 벌였다. KBO 리그가 출범한 지 10년 된 해였다. 이른바 ‘한· 일 슈퍼게임’으로 이름 지은 그 교류전은 이용일 KBO 초대 사무총장이 발 벗고 나서 성사시켰고, 1999년까지 4년 간격으로 3차례 열렸다.
아직도 잊지 못할 광경이 있다. 그해 11월 2일 슈퍼게임 1차전에 앞서 전날에 도쿄돔 구장을 찾은 한국 선수들이 구장을 둘러보곤 눈이 휘둥그레 해졌음은 물론 거리감을 찾지 못해 당혹한 표정을 지었던 일이 눈에 선하다. 물론 이튿날 막상 경기에 들어가선 적응을 잘하긴 했으나, 어쨌든 한국프로야구 선수들은 한· 일 슈퍼게임을 계기로 넓은 야구 세계를 경험했고, 그 후 선동렬, 이종범, 이상훈에 이어 이승엽까지 일본 프로야구무대에서 뛸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로부터 30년 세월이 훌쩍 지난 올해 3월 WBC에서 한국 대표팀은 일본에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무참히 졌다. 강산이 3번 바뀌는 동안 오히려 퇴보한 인상마저 준, 참담한 결과였다. 대표선수들은 기량은 물론 정신력마저 일본 선수들과는 비교할 수 없으리만치 무기력했다. ‘공에 눈이 떨어지면 안 된다’는 가장 초보적인 기본마저 지키지 못한 강백호 같은 어처구니없는 선수도 나타났다. 현장 취재 기자들의 사이에선 대표팀 일부 코치는 선수들과 시시덕거리며 사진 찍기에 바빴다는 얘기도 나왔다.
여론의 질타가 쏟아졌고, 재야의 몇 야구인이 대표팀의 등 뒤에서 화살을 쏘아대는 볼썽사나운 일도 있었다. 으레 그랬듯 이런저런 훈수도 등장했다. 이를테면, ‘고교야구 알루미늄 방방이 부활론’도 그런 것 중에 하나다. 하지만, 중구난방의 그런 주장은 앞으로 KBO와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공청회라도 열고 깊이 논의를 해 바람직한 방향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선수들은 어려서부터 무한 경쟁에 내몰린 지 오래다. 과정의 정당성은 도외시되고 있다. 선수 지도는 뒷전으로 코치들에게 맡겨놓고 팀을 짜 맞추기 위해 외지에서 유망한 선수를 데려오려고 동분서주하는 고교 감독이 유능 지도자로 평가받는 게 한국 고교야구의 숨길 수 없는 현실이다.
KBO는 한국 야구대표팀의 도쿄 참사 이후 3월 16일에 10개 구단 실행위원회를 열고 “냉정하게 문제점을 분석하고 중장기적인 대책을 수립, 리그 경기력 및 대표팀의 경쟁력을 향상시키겠다”고 공언했다. 그 같은 주창에 대해 아마추어와 소통을 단절하고 ‘그들만의 리그’에 몰두해온 KBO가 제대로 실천할 수 있을지 회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많다.
야구계 일각에서는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야구 대표팀의 국제무대 참사는 ‘구조적인 문제’로 인식,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소개하자면, ‘KBO 리그 10 구단 체제가 낳은 폐해’라는 역설(逆說)이 그것이다. 근본적으로는 팀 수가 늘어난 게 하향 평준화의 원인이라는 진단이다. 9 구단을 갑작스럽게 만드는 바람에 결국 짝수인 10 구단 체제로 갈 수밖에 없었고, 선수 수급에 문제가 생겨 외국인 선수 확대로 땜질을 했으나 수준 미달에 시달리게 됐다는 것이다.
단순한 논리로 보더라도 일본은 인구 1억 2000만 명에 12개 구단, 한국은 5000만 명에 10개 구단이다. 돌이켜보면 9 구단 증설 때 강하게 반대했던 롯데 자이언츠의 주장이 옳았던 셈이다. 적정선을 따지는 것은 부질없는 노릇이지만 리그 부실화의 근본 원인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였다.
제대로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밥그릇이 중요한 야구인들의 성화에 못 이기고 여론에 등 떠밀려 우격다짐 식으로 10 구단 체제를 급조하는 바람에 자원 부족을 초래, 진작 은퇴해야 할 선수들이 늦게까지 버티는 결과도 낳았다. 무리한 확장이 리그 질 저하를 불러왔고, 외국인 의존도만 심화시켰다.
쓸만한 자원이 부족하니까 FA 선수들의 몸값은 해마다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너도나도 100억 원을 들먹이는 시대가 됐으나 WBC에서도 그랬듯이 고액 몸값 선수들의 부실한 모습만 재확인했을 뿐이다.
어쩔 수 없이 외국인 선수를 늘렸으나 국내 선수들을 육성하고 성장시킬 토대만 줄어든 셈이 됐다. 구단마다 외국인 투수들이 1, 2선발로 행세하고 그들의 활약에 따라 구단의 일 년 농사가 좌우되는 현상이 고착됐다. 외국인 선수를 줄여 토종선수들의 입지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구단 수가 늘어나면서 집중력이 약해졌고 심하게 말하자면, ‘투, 타 선수들이 대충해도 먹고 살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한 야구인은 “(WBC 참사는 고액선수들) 몸값 1000억 원의 굴욕이다. 우리가 파워는 앞선다는 게 헛소리임이 입증됐다. 이젠 유럽이나 남미도 메이저리그를 맛본 선수들이 많아 똑같이 ‘빅볼’로 부딪쳐서는 힘들 수밖에 없다”면서 “엉뚱하게 장외에서 흔들어내는 바람에 물러난 국제무대 지도 경험이 많은 선동렬 같은 대표팀 전임감독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고 긴 한숨을 토해냈다.
그렇다고 8 구단 체제로 돌아갈 수도 없다. 철저한 자성(자기성찰과 반성)을 거쳐 원점에서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를 야구계가 해야 한다. 큰 틀에서 야구계 전체 논의가 필요하다. 근년 들어 아마와 프로의 소통이 단절된 것은 KBO의 책임이 크다.
진단과 처방 없이, 그저 망각의 시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가.
글. 홍윤표 OSEN 고문
사진. OSEN 손용호, 지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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