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간첩보다 위험한 간첩 숙주

유회경 기자 2023. 3. 30.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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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습니까?"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렇게 말한 적이 없다며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이 말은 이제 그의 발언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 여론 주도층의 안보 불감증을 꼬집는 클리셰가 돼버렸다.

그런데도 우리는 북한에 우호적인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간첩이 전혀 없는 듯이 지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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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경 전국부장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습니까?”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이렇게 말한 적이 없다며 극구 부인하고 있지만, 이 말은 이제 그의 발언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 여론 주도층의 안보 불감증을 꼬집는 클리셰가 돼버렸다. 하지만 이젠 이 말이 쏙 들어갔다. 윤석열 정부 들어 간첩 색출에 총력을 기울이고 실제로 성과가 나고 있기 때문이다. 창원을 비롯해 진주, 전주, 제주 등 전국 곳곳에서 간첩 활동을 한 사람이나 조직이 무더기로 검거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최근 참모들에게 북한이 민주노총 반정부 투쟁 선동 지령을 내렸다는 언론 보도를 언급하며 “나라에 간첩이 이렇게나 많나”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이 말은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습니까와 정확히 대척점에 있다. 사실 남북이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리고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간첩이 없다고 여기는 게 얼마나 순진한 발상인가. 그런데도 우리는 북한에 우호적인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간첩이 전혀 없는 듯이 지내왔다. 요즘 세상에 간첩이 어디 있습니까 발언이 괜히 퍼진 게 아니다.

방첩 당국은 27일 중국 광저우(廣州), 캄보디아 프놈펜 등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촉하며 100여 차례에 걸쳐 대남 지령문 등을 주고받은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4명을 구속했다. 북한 공작원과의 접촉도 접촉이지만 북한이 민주노총 조직국장과 이른바 창원 간첩단(자주통일 민중전위)에 각각 전달한 지령문 내용을 보면 기가 찰 노릇이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직후인 지난해 11월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투쟁 같은 각계각층 분노의 최대 분출을 위한 조직 사업 전개’ ‘윤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제2 촛불 국민 대항쟁 목표로 촛불시위 확대 전개’ 등을 각각 지시한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은 또 민주노총 전·현직 간부 4명에게 한·일 관계 악화를 위해 일장기 화형식, 대사관·영사관 기습 시위 등을 거론하며 파격적인 반일 투쟁을 적극 벌일 것을 지시했다. 방사능 오염수 방류 문제를 걸고 반일 민심을 부추겨 일본 것들을 극도로 자극시키라는 지령문도 내렸다. 우연의 일치일까. 지난 몇 년간을 돌이켜 보면 우리 사회 여론은 북한이 마음먹은 대로 흘러갔다.

북한 지령에 많이 휘둘렸거나 북한이 원하는 방향과 싱크로율이 높은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여론에 민감한 게 사람이다. 오죽하면 미국 와튼 스쿨의 조나 버거 교수는 내 결정의 99.9%는 타인에 의해 이뤄진다고 했을까. 간첩들이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글 혹은 뉴스 댓글을 통해 떠들고 노조에 휘둘리는 언론사들이 분위기를 한껏 잡으면 부지불식간에 이태원 참사를 방조한 정부의 무능함과 무책임성에 대해 부르르 떨고 강제 연행을 떠올리며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다시 돋우게 된다. 스스로 판단해 내린 결정이라 항변할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사실 내 주체적인 사고와 외부 영향 부분을 구분하는 게 얼마나 힘든가. 다만, 이건 자문해봐야 한다. 왜 내가 독자적으로 내린다는 결정이 북한의 지령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우리와 총부리를 마주한 북한을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사고하는 습성이 몸에 배게 됐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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