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일본에 먼저 손 내밀어야 하는 이유들

2023. 3. 30.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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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문제 해법이 발표되던 날, 병자호란의 끝을 다룬 영화 '남한산성'을 다시 보았다.

그래도 그렇지, 왜 피해자인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느냐고?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일본은 국민의 정치 신뢰가 높지 않은 정당 중심의 내각제 국가여서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일본이 먼저 손 내밀기를 기다릴 상황이 아니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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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문제 해법이 발표되던 날, 병자호란의 끝을 다룬 영화 ‘남한산성’을 다시 보았다. 척화파 김상헌이 말한다.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자고. 그러자 주화파 최명길이 왕을 향해 말한다. “상헌의 말은 지극히 의로운 말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삶의 길이 있지 않습니다. … 전하, 죽음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 삶과 죽음 둘 가운데 하나를 취한다면 우리의 선택은 어느 쪽이어야 할까? 삶의 길이다. 아니, 삶의 길이어야 한다. 그것은 너와 나만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죽음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 개선을 반대하는 분들의 주장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최명길의 말처럼 그것은 그저 의로울 뿐, 그 속에 우리의 삶과 미래는 있지 않다. 여러분은 말할 수 있다. 일본의 부품·소재에 대한 수출 규제가 오히려 우리가 직접 만들어 쓰게 하지 않았느냐고.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이다. 나라 간에 서로 다른 것을 만들어 팔고 사는 국제 분업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 성립한다. 즉, 사다 쓰는 쪽은 힘들게 만들어 봐야 기술 수준과 원가와 시장 신뢰를 따라갈 수 없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 분업 체계를 역행하는 게 산업 현장과 시장에서 얼마나 큰 짐이 되는지 아는가? 이런 식으로는 곤란하다.

금융과 자본시장이 크게 흔들리는 가운데 보호무역의 장벽이 높아지고 있다. 공급망 붕괴와 자원·기술의 무기화 같은 파도까지 덮치고 있다. 기축통화 국가로서 자유시장의 철학을 가진 나라, 그리고 자원의 결핍 등 동병상련의 문제를 가진 나라, 이런 나라를 등진 채 우리 홀로 이 모든 걸 넘을 수 있다는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가.

안보 문제도 마찬가지다. 북한 핵만 해도 지금의 김정은 정권이 이를 어찌할지만 두려운 게 아니다. 절대주의 체제는 절대적으로 붕괴하는 법. 언젠가 일어날 정치적 소요 속에서 그것이 누구의 손에 의해 어떻게 활용될지 모른다는 사실이 더 두렵다. 지난 정부에 의해 그나마 있던 대북 정보 체계가 훼손된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높은 수준의 정보를 가진 나라를 등질 이유가 있는가.

그래도 그렇지, 왜 피해자인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느냐고? 여기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일본은 국민의 정치 신뢰가 높지 않은 정당 중심의 내각제 국가여서 과감한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정당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5년 단임의 우리 정부가 손을 내밀지 않는 한 긴장 관계를 풀기 어렵다. 또 하나, 일본 정부나 재계의 한국에 대한 신뢰가 높지 않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위안부 합의가 뒤집힌 게 큰 영향을 미쳤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만 해도 합의 당사자로, 그 트라우마를 쉽게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이 먼저 손 내밀기를 기다릴 상황이 아니란 말이다.

다시 말한다. 그 의도가 어디에 있든 여러분의 문제 제기는 틀리지 않는다. 의롭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속에 삶과 미래의 길은 없다. 여러분의 문제 제기가 삶의 길을 막아서도, 의로움이 미래로의 길을 막아서도 안 된다. 여러분만이 역사의식이 있다는 생각이나 여러분만이 옳다는 생각은 더더욱 안 된다. 어차피 미래를 위한 결정이다. 그 평가 또한 미래로 넘기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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