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비즈] 좋은 관치경제는 없다

2023. 3. 30.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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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대출금리가 천정부지로 오르고, 겨울철 난방비 폭탄, 통신비를 포함한 생계비 상승, 국민연금·건강보험료 인상 등으로 서민과 중산층 가릴 것 없이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15일 “금융·통신은 공공재 성격이 강하고 정부의 과점적 특허사업이므로 소유가 분산된 기업들은 소위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의결권 행사)가 작동돼야 한다”면서 경쟁시스템 강화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주문했다. 민심 달래기용 대책이지만 윤석열 정부가 출범 초부터 천명한 자유시장경제 원칙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이후 공정거래위원회는 은행권의 금리·수수료 담합 여부와 통신사의 불공정거래 여부를 가리기 위해 현장조사에 돌입했다. 정부와 여당은 금융지주회사와 민영화된 공기업 최고경영자의 연임에 수차례 제동을 거는 등 관치인사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또한 정부는 소주가격 인상에 제동을 걸기 위한 실태조사에 착수한 데 이어 석유제품 가격 인하를 위한 정유사들의 도매가격 공개도 추진하는 등 장바구니 부담을 줄이기 위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지난 1월 소비자물가가 5.2% 올라 둔화하던 상승폭이 오히려 확대되고 서민의 고통이 커지자 정부가 물가잡기에 직접 나선 것이다.

은행·통신사에 대한 정부의 비판공세는 서민들의 생활은 어려워졌는데 독과점 구조에서 폭리를 취하고 지배주주가 없는 것을 이용해 최고경영자가 ‘셀프 연임’을 한다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특히 5대 시중은행은 과점상태에서 별다른 노력 없이 예대금리차 확대로 떼돈을 벌어 ‘나홀로 돈잔치’에만 몰두한다고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다. 게다가 생필품 가격부터 전기·난방 등 에너지 요금까지 급등해 서민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정부로서는 분위기 반전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일각에선 정부 만능주의에 빠진 과도한 관치경제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는 대통령 발언 이후 금융지주회사들의 주가가 폭락하는 등 시장이 요동쳤다. 은행은 국가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해 은행의 실패는 곧 국민의 피해로 이어지는 만큼 공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따라서 은행은 다른 산업에 비해 공공성이 강한 것은 맞지만 결코 공공재는 아니다.

그럼에도 유독 한국에서 은행의 ‘공공성’이 중시되는 근거는 정부가 외환위기 이후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과 함께 구조조정을 단행해 현재의 과점체제를 구축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공공성 운운하면서 은행 금리와 인사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성 관치경제이다.

정부는 시장이 룰대로 공정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심판이지, 직접 뛰는 선수가 아니다. 정부가 공공성을 제고시키려 하더라도 법과 제도 같은 시스템을 통해 해야 한다. 서민 부담을 덜어주려는 정부의 계획도 강압적 방식이 아닌 시장 기능과 자율성이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물가안정을 빌미 삼아 정부가 시장에 개입해 가격을 통제하면 가격인상 시점만 늦출 뿐 결국 서민에게 더 큰 피해가 돌아간다. 기업들의 지배구조도 의사결정 과정이 투명해질 수 있도록 공정한 원칙을 제시하고 제도를 정비하는 수준에 그쳐야 한다.

관치경제는 자유시장경제와 반대로 정부가 심판이 아닌 선수로서 직접 시장 개입에 나서는 정부주도 경제를 의미한다. 전형적인 국가주도의 관치경제인 공산주의 국가들이 지구상에서 거의 사라졌고, 중국이나 베트남마저도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있다는 사실은 좋은 관치경제는 없고 나쁜 관치경제만 존재함을 보여준다. 윤석열 정부는 고물가·고금리의 복합위기 상황에서 빠른 정책적 성과를 내려는 ‘관치경제 유혹’에서 벗어나, 출범 초부터 내세운 ‘민간·기업·시장주도 경제’로 가는 자유시장경제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강명헌 단국대 명예교수·전 금융통화위원

pin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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