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전기요금 누진제 정당”…소비자 소송 패소 확정

김혜리 기자 2023. 3. 30.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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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요금 인상에 전기·가스·수도 물가가 치솟으며 전체 물가 상승률은 9개월째 5% 이상을 기록한 가운데 2일 서울 시내의 한 주택가에 가스계량기가 설치돼 있다. 권도현 기자

가정용에만 전기요금 누진제를 적용하는 것은 정당하다는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30일 박모씨 등 87명이 한국전력공사를 상대로 낸 전기요금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누진제는 전력 이용량이 많을수록 높은 단가를 적용하는 요금제도다. 1973년 석유파동을 계기로 국내에 처음 도입됐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전기 공급량이 부족해지자 산업용 전력을 확보하고 가정용 전력 소비를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처음에는 12단계에 따라 구간을 나눠 요금을 차등 적용했는데 개편을 거쳐 현재는 3단계로 구간을 나눈다. 전력사용량이 200kWh 이하인 1구간에는 kWh당 112.0원, 201~400kWh인 2구간에는 kWh당 206.6원, 400kWh 넘게 사용하면 kWh당 299.3원을 매기는 식이다.

해당 제도는 주택용(가정용) 전기요금에만 적용된다. 여름에 요금 폭탄 공포로 ‘집에서 에어컨도 못 켜겠다’며 꾸준히 불만이 나오는 배경이다.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다른 국가들에 비해 산업용과 가정용 전력 소비량 편차가 크다고 꼽히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본 소송을 제기한 소비자들은 산업용 전기요금에는 누진제를 적용하지 않으면서 가정용에만 적용하는 것은 부당하고 누진율도 지나치게 과도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2심은 모두 한전 측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원고들이 누진제를 적용하지 않을 경우의 정상적인 전기요금이나 원가가 어느 정도인지 입증하지 못해 한전이 부당하게 얻은 이익이 얼마인지 산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도 “(한전이) 국내 유일 전기판매사업자라는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자신들에게만 유리하게 약관을 작성하고 전기요금을 책정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전기료 기본공급약관을 작성하거나 변경할 때 전기위원회의 심의와 기획재정부 장관과의 협의를 거쳐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정된 필수공공재인 전기의 절약을 유도하는 것이어서 사회적·정책적 필요성도 있다고 봤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옳다고 판단했다. 한전이 지위를 남용하지 않았고, 다소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누진제 자체가 소비자들에게 부당하게 불리하다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관련 규정에선 전기판매사업자의 이윤이 과다하게 산정되지 않도록 감독·통제하는 절차가 있다”면서 “누진제의 구간이나 구간별 전기요금은 관련 절차를 준수해 그 기준을 위반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책정됐다”고 했다.

또 “전기요금 산정이나 부과에 필요한 세부적인 기준을 정하는 것은 전문적·정책적인 판단을 요하고 기술 발전·환경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필요도 있다”며 “정책에 따라서는 시간대별·계절별 차등 요금제 등 다양한 방식의 전기요금제가 누진요금제와 함께 활용될 여지가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전국에서 제기된 누진제 소송은 모두 14건, 대법원에 올라간 사건은 모두 7건이다. 2017년 인천지법이 유일하게 1심에서 소비자의 승소 판결을 하기도 했지만 2심에서 뒤집혔고, 다른 사건의 하급심에서도 원고 패소 판단이 이어졌다. 대법원의 이날 판결로 남은 사건의 결론도 원고 패소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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