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근 칼럼] 머리가 둘인 지방은행

김재근 선임기자 2023. 3. 30.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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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머리에 하나의 꼬리를 가진 뱀은 수레에 밟혀 죽지만, 하나의 머리에 천 개의 꼬리를 가진 뱀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살 수 있다."

충청권 4개 시도의 공동 현안인 충청권 지방은행 설립이 안갯속이다.

'지방은행'은 예적금과 대출, 어음할인 등을 취급하여 예대마진으로 먹고 사는 일반은행이다.

그동안 560만 충청인과 자영업자, 중소기업이 염원해온 것은 '지방은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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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도 의지, 천재일우의 기회
지역민 원하는 설립 방향 파악
대전·충남 '경쟁' 말고 '결단'을
김재근 선임기자

"천 개의 머리에 하나의 꼬리를 가진 뱀은 수레에 밟혀 죽지만, 하나의 머리에 천 개의 꼬리를 가진 뱀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살 수 있다."

아시아에서 유럽까지 대제국을 건설한 칭기즈칸이 1227년 64세의 나이로 죽으며 남긴 말이다. 네 아들이 서로 황제가 되겠다며 땅을 나눠 갖고 싸울 것을 걱정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유언은 지켜지지 못했다. 칭기즈칸과 그 후손들은 황제가 죽고 후사를 세울 때마다 골육상쟁을 되풀이했고, 원나라는 100년도 채우지 못한 채 중원을 잃고 막북으로 물러났다.

충청권 4개 시도의 공동 현안인 충청권 지방은행 설립이 안갯속이다. 외견상 충남도가 지방은행을, 대전시는 한국벤처투자은행(가칭)을 추진하고, 중앙정부도 5대 시중은행의 독과점 체제를 깨겠다며 새로운 은행 출범을 예고하고 있다. 머지 않아 새로운 은행이 탄생하고 그게 충청권에 설립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그러나 속내를 보면 여간 갑갑한 게 아니다. 우선 지방은행과 기업금융중심은행 중 어느 쪽으로 가는지 헷갈리게 한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도산과 도이치뱅크 위기설 등 글로벌 금융 혼란이 불거지면서 은행 신설이 가능한지, 자본이 열악한 신설 은행이 과연 생존할 수 있는 지 의문을 제기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윤석열 후보가 '충청권 지역은행 설립'을 대선공약으로 제시하고,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되려 흐릿해지는 모양새다.

충남도와 대전시가 각자 추진하는 지방은행과 기업금융중심은행은 전혀 성격이 다르다. '지방은행'은 예적금과 대출, 어음할인 등을 취급하여 예대마진으로 먹고 사는 일반은행이다. 주요 영업범위는 충청권이고, 자본금은 250억원 이상이다. 현재의 부산은행과 대구은행, 광주은행 같은 것이다.

'기업금융중심은행'은 신산업과 신기술, 벤처 금융 활성화가 목적으로 벤처기업 예금과 대출, 투자 등이 주요업무다. 특수은행으로 영업범위는 전국이며 자본금이 수조원~수십조원이 돼야 한다. 정부가 대주주인 산업은행 및 기업은행과 유사하다.

그동안 560만 충청인과 자영업자, 중소기업이 염원해온 것은 '지방은행'이다. 충청권은 1997년 외환위기 때 지방은행을 잃어버린 아픈 과거를 안고 있다. 금융 구조조정이란 이름 아래 충청은행과 충북은행이 퇴출당한 것이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지역민들은 정치적 힘이 없어 그랬다고 믿고 있다. 실제 이들보다 훨씬 못한 은행도 살아남은 게 사실 아닌가?

그 당시 생존한 부산 대구 광주 전북 제주 경남 6개 지방은행은 잘 나가고 있다. 이들 은행의 총자산이 233조 5,900억원이고, 대출금은 해당지역 예금은행 전체 대출액의 47~50%이나 차지한다. 지역주민과 자영업자, 중소기업이 지방은행에 예금하고 이 돈이 지역에 대출(투자)되는 선순환 구조가 정착돼 있는 것이다. 충남과 충북은 지역내 총생산(GRDP)이 17개 시도 중 1, 2위를 차지할 정도로 경제 규모가 크지만 지방은행이 없어 지역자금의 역외유출률이 가장 높다.

충남과 대전은 지방은행이나 기업중심은행 중 하나를 택하든지, 둘을 하나로 묶든지 빨리 조율하고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부도 머뭇거리지 말고 현실성 있는 쪽으로 분명하게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정권 초기인 올해 안에 결론을 내지 못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지방은행을 설립을 싸고 좌고우면할 겨를이 없다. 충청권 모두가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고, 정부도 새로운 은행 설립에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런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충청도민이 하나로 똘똘 뭉쳐도 쉽지 않은 일이다. 천재일우의 이번 기회를 놓치면 대전과 충남 시도지사에게 엄청난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머리 둘을 내놓고 더 이상 지역민에게 선택을 요구하고 헛갈리게 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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