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원, 얼마나 힘들었으면…큰 용기 냈다" 7개월 고민 끝 제보, 비리 뿌리 뽑는다
[OSEN=이상학 기자] LG 포수 박동원(33)이 장정석(50) 전 KIA 단장으로부터 ‘뒷돈’을 요구받은 것은 지난해 8월말 시즌 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비 FA 신분이었던 박동원은 4월에 트레이드로 KIA에 넘어왔고, 무난하게 팀에 잔류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원정 숙소에서 박동원을 따로 불러낸 장 전 단장의 입에서 뜻밖에도 뒷돈을 요구하는 말이 나왔다. 키움 시절부터 알고 지낸 지 10년이 훌쩍 넘은 사이라고 해도 가볍게 나눌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장 전 단장과 만난 자리에서 박동원은 녹취를 했다. 또다시 뒷돈을 요구하는 부적절한 발언이 이 녹취 파일에 그대로 담겨있다.
박동원은 시즌 후에도 KIA와 잔류 협상이 불발됐고, 지난해 11월 LG와 4년 65억원에 FA 계약하며 팀을 떠났다. 박동원은 이적 후 손편지로 KIA 코칭스태프, 선수,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KIA에 관한 이야기를 삼갔다. LG로 이적한 뒤 인터뷰 때마다 구단을 통해 미리 KIA에 대한 질문을 빼달라는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단순히 팀을 떠나서 받을 비난이 두려운 게 아니었다. 장 전 단장의 수차례 뒷돈 요구가 박동원의 마음에 계속 찜찜하게 남았다. 최초 요구를 받은 뒤 7개월이 지난 시점에 큰 용기를 냈다. 이달 초 KIA 구단주실에 이메일로 관련 사실을 제보했고,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에도 녹취 파일을 제출하며 도움을 청했다.
왜 지금 이 시점일지에 대한 궁금증도 있다. 이에 대해 장동철 선수협 사무총장은 “작년 8월이 사건의 시작이었다. 이후 6~7개월이 지났는데 그 과정에서 선수 스스로 얼마나 힘들었으면 계속 고민했겠나. 자기는 (뒷돈 요구에)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지만 그런 얘기를 여러 번 들은 것 자체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며 “KIA 소속일 때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위치였다”고 밝혔다.
이어 장 총장은 “팀을 옮긴 뒤에도 (박동원이) 계속 고민을 해왔는데 자신은 KIA를 나갔지만 그 사람(장 전 단장)이 팀에 있는 한 제2, 제3의 케이스가 또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며 “그대로 있으면 앞으로 피해를 볼 사람들이 또 있을 테니 KIA 구단주실에 에 이메일을 보내며 신고했다. 이런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오랜 고민 끝에 큰 용기를 낸 것이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박동원은 자신의 에이전시가 아니라 선수들의 인권과 권익 보호를 위해 설립된 선수협과 같이 움직였다. 장 총장은 “선수가 여러 가지 생각이 있었겠지만 자기 개인만 생각했다면 에이전트를 통해서만 대처할 수도 있었다. 전체 선수들을 생각해 선수협에 제보를 하고 같이 논의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땅덩어리가 좁은 우리나라에서 야구판은 더 좁다. 한 다리만 건너도 모두 직간접적인 선후배 관계로 얽힌다. 박동원이 신고한 장 전 단장은 몇 안 되는 1군 감독과 단장을 모두 경험한 유능한 야구인 선배였다. 키움에서는 감독과 선수로 함께한 관계이기도 했다. 내부 고발자를 배척하는 우리나라 문화에서 박동원이 이런 결심을 하기까지는 상당히 큰 용기와 오랜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다. 감정적인 폭로가 아니라 이성적으로 차분하게 대처했다. 합리적인 절차 속에 일을 진행했다.
아마추어 야구에서도 근절돼 가는 이런 비위 행위가 프로야구에서 벌어진 것 자체가 충격적이다. 박동원이 수면 위로 끌어올리지 않았다면 암암리에 관행처럼 만연해질 수도 있었다. 장 총장은 “오프시즌이었다면 이와 관련해 전수 조사를 했을 텐데 개막을 앞두고 있어 지금은 시기상 쉽지 않다. 그래도 만천하에 이런 일이 공개됐으니 비슷한 일을 겪은 선수들이 있다면 선수협에 제보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야구계가 힘든 상황이지만 발본색원 해서라도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waw@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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