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경대] 너븐숭이 애기무덤

남궁창성 입력 2023. 3. 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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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 가는 이들에게 제주의 봄은 노오란 원피스를 입고 춤추는 유채꽃으로 기억된다.

1박2일, 2박3일 다녀가는 관광객들에게 제주는 "호호!! 하하!!" 웃음이 넘치는 바다 건너 관광지로 추억된다.

제주의 봄은 먹먹하다.

제주의 봄은 처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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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쳐 가는 이들에게 제주의 봄은 노오란 원피스를 입고 춤추는 유채꽃으로 기억된다. 1박2일, 2박3일 다녀가는 관광객들에게 제주는 “호호!! 하하!!” 웃음이 넘치는 바다 건너 관광지로 추억된다. 내가 꼭 그랬다.

제주의 봄은 먹먹하다. 빛나는 생명으로 출렁이는 함덕 앞바다를 마른 눈으로 마주할 수 없다. 4월을 예비하는 불타는 섬에는 주검에서 환생한 자줏빛 까마귀들이 한라산 기슭을 날며 어깨를 들썩여 호곡한다. 제주의 봄은 처연하다. 핏방울이 되어 뚝뚝 떨어지는 동백꽃을 검은 대지는 도저히 받아낼 수 없다.

4·3사건 75주년을 맞는 제주에는 지난 주말 비가 그칠 줄 몰랐다.

북촌마을 너븐숭이 애기무덤에도 이슬비가 내렸다. 1949년 1월17일. 아이들은 아버지, 엄마, 순이삼촌 손에 이끌려 학교 운동장에 나갔다. 그리고 한 가운데 그어진 선을 따라 생사가 갈리며 한 송이 동백꽃으로 무참히 꺾였다.

교래마을 김계생과 그의 자녀 1, 2, 3, 4. 일가족 다섯명은 제 이름도 남기지 못한 채 한날한시에 총성과 함께 묻혔다. 솜털같이 가벼운 몸이 하늘로 하늘로 치솟으며 고향땅 돔배오름이 저 아래 까마득히 보였다.

서우봉 정상 몬주기알에는 비가 사선으로 날렸다. 바닷바람에 출렁이는 유채밭의 황금빛 파도는 검은 바위에 부서져 무채색으로 사라졌다. 1948년 12월26일. 마을 아낙 다섯명은 총구가 내뿜는 불덩이에 천 길 절벽으로 떨어졌다. 소라를 잡던 다려도가 손에 잡힐듯 한 데 젖은 솜처럼 무거운 몸은 끝없이 끝없이 가라앉았다.

제주4·3은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이듬해 4월 3일 발생한 소요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발생한 무력 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다. 그들의 숨결을 되살리고 복권하는 일은 숙제다. 하지만 양 극단의 평가에 정명(定名)은 표류 중이다. 제주를 떠나던 날 시내에서 펄럭이던 ‘공산폭동’ 현수막은 그래서 더 아프고 더 슬프다. 남궁창성 서울본부장

cometsp@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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