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마을서 시작한 가족은행… ‘IT 돈줄’ SVB 품었다

조성호 기자 2023. 3. 3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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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년 역사 퍼스트시티즌스, 고객 돈 굴릴 땐 보수적이지만 부실 은행 인수엔 ‘동물적 감각’… 美 16번째 규모 은행 자리매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州) 채플힐의 퍼스트시티즌스 은행 지점./로이터 뉴스1

전 세계 스타트업과 첨단 정보 기술(IT) 산업의 중심지에서 돈줄 역할을 해 오다 파산한 실리콘밸리은행(SVB)을 품에 안은 곳은 공교롭게도 시골 농촌 마을에서 시작해 3대째 가족이 운영하는 중소 은행 퍼스트시티즌스였다. 125년 역사를 자랑하는 퍼스트시티즌스는 예금 고객의 70%를 예금자 보험에 가입하도록 하는 보수적인 운영을 해오면서도 부실 은행이 등장했을 땐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어 인수하는 과감한 행보로 미국에서 16번째 규모의 은행으로 성장하게 됐다.

퍼스트시티즌스 은행이 SVB를 인수하기로 합의한 지난 27일(현지 시각) 이후 파이낸셜타임스와 포브스 등 경제 매체들은 앞다퉈 퍼스트시티즌스가 어떤 은행인지 소개하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SVB를 인수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1090억달러(약 141조7000억원) 자산 규모로 미국 내 30위권에 머물렀던 퍼스트시티즌스는 단숨에 2190억달러(약 284조7000억원)로 자산 규모를 두 배가량으로 늘리며 20위 안에 진입했다.

퍼스트시티즌스는 1898년 노스캐롤라이나주의 존스턴카운티라는 농촌 마을에서 자본금 1만달러를 가지고 시작한 은행이다. 당시 이 지역의 유일한 은행이었고, 주 고객은 농민이었다.

창업주는 따로 있지만, 1918년 이 은행에 입사한 로버트 파월 홀딩이 1935년 회장에 오르면서 홀딩 가문의 3대 경영이 시작됐다. 현재 회장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프랭크 홀딩 주니어는 2009년 그의 삼촌이자 로버트 파월 홀딩의 차남인 루이스 홀딩에게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현재 프랭크 홀딩 주니어의 여동생과 처남이 부회장과 사장을 각각 맡고 있다. 홀딩 5남매는 퍼스트시티즌스 지분 중 20%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지난 27일 SVB 인수 발표 직후 주가가 54% 폭등한 덕분에 5억달러 이상의 차익을 얻게 됐다.

퍼스트시티즌스는 농촌 특유의 보수적인 경영으로 유명한 은행이다. 미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에 따르면, 이 은행은 고객 중 70%가 예금자 보험에 가입돼 있어 SVB 파산의 주요 원인이 된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가능성이 극히 낮다는 평가를 받는다. SVB의 경우 보험 가입 비율이 3%에 불과했다. 홀딩 회장은 인수 합의 직후 “보수적인 경영의 강점을 인정받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객의 돈을 굴릴 때는 안전 지상주의를 표방하지만, 은행의 몸집을 불릴 때는 승부를 확실히 걸었다. 2008년 금융 위기 직후 취임한 홀딩 회장은 당시 쏟아지듯 매물로 나온 부실 은행들을 긁어모으듯 인수했다. 20개 이상의 소규모 은행을 인수하면서 2008년 말 기준 167억달러(약 21조7000억달러)였던 자산이 이번 SVB 인수 직전 1090억달러까지 늘어났다.

현지 언론들은 SVB 인수가 퍼스트시티즌스의 위상을 크게 올려 놓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재 22주(州)에 지점 550개가 있는 퍼스트시티즌스는 예금의 70% 이상이 노스캐롤라이나와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몰려있는데 미국 전역의 SVB 지점을 인수하면서 전국구로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이 은행의 주 무대인 노스캐롤라이나주에는 300여 IT 기업이 입주해 ‘제2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리서치트라이앵글파크가 조성돼 있어 SVB 인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란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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