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저출생 시대, 위기청소년의 복지를 생각하다

기자 2023. 3. 3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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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1990년대 중·고등학교 교실에는 한 반에 50~60명이 콩나물시루처럼 빽빽이 앉아있었다. 지금은 한 반이 20명 정도다. 저출생으로 인해 학령기 인구가 급감한 탓이다. 담임이 교단에 서면 학생들이 한눈에 다 들어올 인원이다. 교과 교육과 생활지도를 하기에 더 효율적이지만, 가끔 교실에 빈자리가 생긴다. 가정과 학교의 보호망을 벗어나 가출과 무단결석을 반복하는 ‘위기청소년’의 자리다.

최원훈 법무부 인천보호관찰소 소년과 책임관

소년법 제4조에 따르면, 정당한 이유 없이 가출하거나 유해환경을 접하는 성벽이 있는 우범소년은 소년부의 보호사건으로 심리할 수 있다. 물론 죄를 범한 소년과 촉법소년도 마찬가지다.

매년 전체 청소년 인구 중 약 1%가 가정법원 소년부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다. 판사는 이 중 약 70%의 소년에게 사회 내 처우인 보호관찰 처분을 결정한다. 보호관찰관의 지도·감독에 순응하며 가정에 충실하고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해야 하지만, 보호처분 결정 이후에도 소년을 둘러싼 환경은 별로 변한 것이 없다. 따라서 보호관찰관의 중요한 업무 중 하나는 소년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원호·지원을 하는 것이다.

몇년 전, 내가 보호관찰 지도·감독을 맡은 여학생이 있었다.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고 죄명은 절도였다. 이 학생은 보호관찰 신고를 위해 출석하여 나와 첫 면담을 했다. 판사가 부과한 특별준수사항이 ‘가출하지 말 것’이니, 앞으로 가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교육했다. 이 학생이 말했다.

“우리 집에서 살아보셨어요?”

순간, 말문이 막혔다.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이 떠올랐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그 불행의 이유가 저마다 다르다.’

이 학생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무단결석과 가출을 일삼았다. 어머니는 이 학생이 세 살 때 집을 나간 후 연락이 두절되어 한부모 가정에서 성장했다. 이 학생을 실질적으로 양육한 할머니는 치매 증상이 있었지만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일용노동을 하는 아버지의 수입으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갔다. 아버지는 딸을 체벌하며 엄하게 훈육했다. 하지만 거듭되는 가출과 비행에 지쳐 방임하게 되었고, 일탈은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초·중·고등학생은 약 545만명이다. 전국 초·중·고등학생의 최근 1년 내 가출 경험 비율은 3.5%이다. 가출 이유는 부모님과의 문제(61.7%)가 가장 많았고, 다음은 학업 문제(15.9%)였다.

따라서 사각지대 위기청소년의 교화·개선은 가정과 학교에서 시작해야 한다. 농협과 셀트리온 복지재단에서 기부받은 예산으로 이 학생의 가정을 원호했다. 할머니의 치매 치료를 위한 의료비도 지원했다. 교육청과 협의해서 경험 많은 학교 교사와 멘토링을 연결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학생은 불량 교우들을 멀리하고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보호처분 결정 전에는 지각이나 무단결석이 잦았으나, 학교 수업이 끝난 뒤 교복을 입고 가방을 멘 채 보호관찰소에 출석하기 시작했다. 요리사가 꿈이었던 이 학생은 가족들을 위해 밥상을 차렸다. 김치찌개도 끓이고 제육볶음도 만들었다며 밥상을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청소년의 재범률은 약 12~13%이다. 대부분의 위기청소년은 보호관찰 기간 중 재범 없이 가정과 학교에 안정적으로 정착하고 있다. 물론 소년의 의지만으로는 힘든 일이다. 그래서 소년 보호관찰은 비행 초기 단계 위기청소년의 가족관계 회복과 학교 적응을 위한 원호·상담 등 회복적 사법을 지향점으로 한다. 새 학기가 시작됐다. 저출생과 인구절벽 시대에 교실의 빈자리를 방치하고 외면해서는 미래가 어둡다. 위기청소년의 복지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최원훈 법무부 인천보호관찰소 소년과 책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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