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정의 음악 정류장] [74] ‘처녀총각’의 복잡한 심경

장유정 단국대 정책경영대학원 원장·대중음악사학자 2023. 3. 3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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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식의 ‘처녀총각’(범오 작사, 김준영 작곡)은 지금도 봄이 되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노래다. 민요 ‘흥타령’에 착안해 만들었다는 이 노래는 1930년대 중반 트로트의 인기를 압도한 이른바 신민요 시대의 신호탄 구실을 했다. 우리 고유의 민요에서 출발한 신민요는 기존 민요와 달리 작사자 또는 작곡자가 명확한 것이 특징이다. 당대인들이 신민요를 좋아한 이유는 다른 대중가요 장르보다 ‘조선 냄새’가 강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것처럼, 이 노래를 부른 강홍식은 배우 최민수의 외할아버지다. 1935년 잡지 ‘삼천리’의 ‘인기 가수의 생활과 예술, 연애’라는 면담 기사에 따르면, 강홍식은 16세 때 평양고등보통학교 시절 미술 선생님과 싸우고 일본으로 건너가 최승희보다 먼저 이시이 바쿠(石井漠)에게 현대무용을 배웠다. 일본에서 배우로 활동했던 호방한 기질의 그는 귀국하여 배우로 인기를 구가하는 한편 대중가요 가수로도 활동했다. 처음에는 노래 부르기에 서툴러서 독일인 녹음 기사에게 여러번 지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만나는 음악인마다 붙들고서 노래 배우기를 간청하는 피나는 노력 끝에 결실을 보았다. 1934년에 발매한 ‘처녀총각’은 1년여 만에 오늘날의 밀리언셀러에 해당하는 3만장의 음반이 팔릴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이 노래는 1940년대 일본에서 ‘쓰키노한토(月の半島)’라는 노래로 소개되었으며, 광복 이후 북한에서는 ‘새봄을 노래하네’라는 제목으로 개작되어 불렸다. 또한 1960년대에는 독일에까지 알려졌다. 서울대 음대생인 최정환이 백합의 ‘릴리(lily)’와 ‘꽃 화(花)’를 결합한 ‘리리파(LILIFA)’란 이름으로 독일에서 활동하며 1964년 ‘처녀총각’을 독일어와 한국어 버전으로 음반에 실었다. 독일어 제목은 ‘밤에 속삭이는 바람’이란 의미의 ‘빈트 바이 나흐트(Wind bei Nacht)’인데, 이 노래를 포함해서 한국의 노래를 유럽에 소개했다는 점에서 그의 활약이 돋보인다.

‘처녀총각’의 1절과 2절은 봄을 맞아 설레는 젊은 남녀의 마음을 경쾌하게 노래하고 있다. 반면에 3절과 4절은 짝을 찾지 못해 한숨 쉬며 신세타령하는 처녀와 늙은 총각의 처지를 묘사하고 있다. 은은하게 불어오는 봄바람에 누구는 설레고, 누구는 신세를 푸념한다. 2022년 혼인 건수는 19만2000건으로 1972년 이후 가장 적었다. 청년 실업과 집값 상승에 따른 주거비 부담 등이 더해진 데다 결혼 적령기 인구 자체가 줄었으니 뭐라 할 수도 없다. 그래도 이 봄, 여기저기 결혼 소식이 들려오니 반갑다. 결혼하는 모든 이에게 축하와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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