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를] 시간을 팔고 싶은 사람들

기자 2023. 3. 30.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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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대유행이 잦아들어서 그런지 올들어 강연이니 북토크니 행사 의뢰가 많이 들어온다. 작업실에 틀어박혀 세상의 아름다운 것과 담쌓고 지내는 사람을 바깥으로 불러내주다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그런데도 수화기를 내려놓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노승영 번역가

1시간 강연에 최저시급의 열 배면 감지덕지할 일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 준비 없이 책 한 권 달랑 들고 갈 수는 없는 법이다. 적어도 일주일 전부터 내용을 분석하고 관련 자료를 검색하고 글이 입에 착 달라붙도록 읽고 또 읽으면서 시간을 재야 한다. 번역가 설움은 강사가 안다더니 문지혁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수업은 일주일에 하루였지만 수업 준비는 일주일이 걸렸다.”(<중급 한국어> 40쪽)

프리랜서에게 행사를 의뢰하는 사람들이 좀처럼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프리랜서에게 시간을 요구하는 것은 말 그대로 돈을 요구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 시간 동안 원래 하던 일을 했을 때 벌어들였을 소득을 포기하라고 요구하는 셈이니 말이다. 그들이 이 사실을 모르는 이유는 정규직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노동자는 시간을 파는 사람이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일정 수준의 삶’을 영위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시간을 뺀 나머지를 회사에 넘기는 대가로 ‘사회적으로 합의된 일정 수준의 삶’을 빠듯이 영위할 수 있는 돈을 받는다. 전자의 수준이 낮으면 “골방서 하루 16시간 노동”을 하게 되고(경향신문 1970년 10월7일 보도) 후자의 수준이 낮으면 최저시급이 9620원으로 정해진다(고용노동부 2023년 8월5일 고시). 그러니까 관건은 얼마큼의 시간을 얼마에 파느냐이고 이것은 투쟁과 협상, 사회 발전에 의해 정해진다. 새 정부가 들어섰지만 두 수준은 여전히 낮은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뒷걸음치고 있다.

그런데 저렇게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정규직 노동자를 부러워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부러워하는 특수고용 노동자를 부러워하는 프리랜서다(부러움의 사다리가 여기서 멈추는 것은 내가 프리랜서이기 때문이다. 그 아래에는 노동자성을 전혀 인정받지 못한 채 그림자 노동을 하는 사람들, 자신의 몸을 갈아 넣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번역가가 출판사와 3000원에 매절 계약을 맺고 한 달에 200자 원고지 1000장을 번역하면 300만원을 버는데, 그것을 30일로 나누고 또 10시간으로 나누면 시급 비슷한 금액이 된다. 그래서 번역가는 시간을 판다고 착각하지만, 그가 파는 것은 시간(노동력)이 아니라 노동이며 그 노동의 가격은 시장에서 정해진다. 그래서 프리랜서가 ‘사회적으로 합의된 일정 수준의 삶’을 영위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주 69시간 노동이니 주 60시간 노동이니 말이 많지만 ‘프리’랜서는 일주일에 120시간까지도 노동할 ‘자유’가 있다. 주 30시간만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지 못할 ‘자유’는 덤이다.

이쯤 되면 행사 의뢰는 전부 거절해야겠지만 나는 들어오는 족족 고맙게 받는다. 독자를 만나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 번역가에게는 무엇보다 뿌듯하고 소중한 기회이니까. 그러려면 시간도 돈도 포기해야 하지만 자유라는 건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노승영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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