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각자의 속도, 각자의 시간

경기일보 2023. 3. 30.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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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승원 한국장애인연기자협회 이사

‘대지’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 벅 여사는 ‘봄이란, 모든 사물과 생명이 살아 숨 쉬는 때’라는 말을 남겼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알게 모르게 한 해의 시작점을 봄으로 친다. 한 해의 시작은 1월이지만 여전히 땅은 속까지 차갑게 굳어 있고 움트는 싹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봄이 오면 여기저기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나고 펄 벅 여사의 말처럼 만물이 소생하는 기운을 누구나 느낀다. 아마 그래서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는 모든 행사는 봄이 오는 3월 즈음에 시작하는 것인가 싶기도 하다.

봄이 가기 전에 서둘러 피어나는 꽃들처럼 3, 4월은 자녀를 가진 어머니들이 가장 분주해지는 시즌이다. 자연스레 아기를 가진 어머니들과의 대화 주제도 그쪽으로 이어지곤 한다. 최근 만난 한 어머니는 자기 자녀가 이번에 초등학교 입학했는데 다른 아이들보다 아무래도 좀 ‘늦는 것 같다’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털어놓았다. 아직 첫 수업도 받지 않은 자녀를 놓고 너무나 걱정 근심이 크길래 내가 우리 딸을 키우던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우리 딸 역시 걸음이 매우 늦었다. 15개월이 지나도 걷지 못하고 바닥을 기어다녔기 때문이다.

‘빠른 아이들은 돌 전에도 걸어 다니는데… 너무 늦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든 나는 참지 못하고 병원을 찾아갔다. 그런데 아이를 한참을 살펴보던 의사 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하셨다. “첫 애라 걱정하시는 마음은 알겠지만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배우는 속도가 다릅니다. 다른 아이가 걷기를 배우는 동안 이 아이가 먼저 배운 것이 있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시고 그게 뭔지를 잘 찾아보세요.”

선생님의 이 말은 이후 내가 자녀를 키우는 데 중요한 이정표 역할을 했다. 그날부터 집에서 자녀를 유심히 관찰했다. 우리 아이는 걸음마는 확실히 늦었지만 대신 말귀가 밝았다. 말도 잘 못하는 아이가 어떻게 아는지 내가 하는 말의 뉘앙스까지 제대로 파악하고 하지 말라는 일은 하지 않았다. 우리 아이가 걸음마보다 먼저 배운 이 능력은 성인이 된 지금도 인생에 매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내 말을 들은 아이 엄마도 다행히 조금은 안심이 되는 눈치였다.

미국의 가장 큰 사이트 중 하나인 레딧(Reddit)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온 적이 있다. ‘뉴욕은 캘리포니아보다 3시간이 빠릅니다. 그렇다고 캘리포니아가 3시간 뒤처진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25세에 사장이 됐고, 50세에 죽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60세에 사장이 됐고 90세에 죽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경주를, 자신의 시간대에 맞춰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긴장을 이제 좀 푸세요. 당신은 당신의 시간에 맞춰, 당신의 경주를 아주 잘 해내고 있습니다.’

나는 이 말이 정말로 맞다고 생각한다. 모든 과정에는 의미가 있다. 남들보다 늦은 사람은 없다. 다만 지금 다른 것을 배우고 있을 뿐이다. 남들과 비교하느라 소중한 삶의 여정을 한시도 허비하지 말자. 우리는 지금 잘하고 잘살고 있다. 우리의 시간에서. 우리의 경주를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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