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표적치료제가 주는 희망

2023. 3. 29.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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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치료로 진전 없던 림프종 환자
유전자 관련 저메틸화 작용제 효과
국내선 연구 부족 건보적용 안 돼
최근 美 대규모 3상연구 시작 주목
한 환자가 타원에서 림프종 진단을 받고 내원했다. 놀랍게도 내원 당일 혈색소수치가 5.4였다. 참고로 동년배 정상인의 경우 적어도 11 정도가 되니 이 정도면 쇼크를 유발할 수도 있는 정도다. 림프종과 연관된 자가면역성 빈혈이었고 수혈을 해도 교정이 잘되지 않았다. 또한 심한 고열과 가려움증으로 매우 힘들어했다. 환자와 같은 혈관면역모구림프종에는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다. 항암치료를 하는 동안 증상이 반짝 좋아졌지만 이내 반복되었다. 1차 항암치료 후 질병이 호전되면 자가조혈모세포 이식(초고용량 항암치료 후 미리 채집한 자가조혈모로 조혈 기능을 회복하는 치료)을 시행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바람과 달리 결국 림프종은 좋아지지 않았다. 더구나 항암치료를 할 때마다 저호중구성 발열(항암치료 시 면역 저하 시기에 발생하는 감염성 발열)로 매번 응급실 치료가 필요했다. 실망하는 환자를 달래면서 항암요법을 변경하여 다시 치료를 시작했다. 본인보다 가족을 걱정하며 흔들리던 환자의 눈빛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1차 요법과 경과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항암제가 투여되는 동안만 잠시 호전될 뿐 이내 증상은 반복되고 부작용으로 고생하였고 질병은 악화했다.
윤덕현 서울아산병원 CAR-T센터 소장
불행 중 다행으로 유전자 검사상 환자의 암에서 후성유전학에 관여하는 유전자 이상이 발견되었다. 아직도 밝혀져야 할 부분이 많은 영역이나 개념적으로 설명하자면, 유전자는 서열이 가장 중요하지만 이와 관계없이 유전자의 활동을 구조적으로 조절하는 덮개가 있고 특히 이런 유전자에 이상이 있는 경우 종양 억제 유전자의 발현이 억제되어 암이 진행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경우 유전자 덮개를 벗겨주면 종양 억제 유전자의 발현이 정상화해 암의 성장을 억제할 수 있다. 더 이상 통상적인 항암요법으로는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환자, 보호자와 상의해서 현재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되지만 유전자 덮개를 벗겨주는 저메틸화 작용제를 써보기로 했다. 이런 설명을 해야 할 때마다 조절되지 않는 병에 대한 공포와 적지 않은 치료비를 함께 감내해야 하는 환자와 가족의 고충에 마음이 아프다. 설명을 듣는 보호자의 착잡한 표정, 환자의 눈물이 내 눈앞도 가린다.

그런데 이 약을 투여하면서 환자의 가려움증이 사라졌다. 혈색소도 7∼8 정도 하던 것이 정상을 상회하는 12까지 올라갔다. 정말 병이 좋아진 것일까? 1주기 후 검사해 보니 병의 80% 정도가 줄어들었다. 모두 함께 기뻐했다. 이런 좋은 치료제가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것은 기존 치료와 비교하는 대규모 3상 연구가 없기 때문이다. 이와 동일한 기전의 경구 치료제에 대한 비교 임상 연구 결과가 최근 보고되었는데 정말 근소한 차이로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필자가 보기에는 임상적으로 매우 유의하지만 86명만을 대상으로 한 소규모의 연구였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통상 림프종의 3상 연구는 적어도 수백명을 대상으로 하는데 이와 비교하면 너무 적다. 이로써 훌륭한 치료제이지만 해당 약제가 정식 승인 및 보험 적용을 받는 길은 일단 요원해졌다. 드문 질환에 대한 진보적인 임상시험 방법과 허가 기관의 전향적인 허가 절차가 필요한 이유다. 그러나 최근 표준 1차 항암요법과 경구 저메틸화 작용제 병용 요법에 대한 매우 고무적인 결과가 보고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미국에서 대규모 3상 임상 연구가 시작된다고 하니 기대가 된다.

환자는 이후에 저메틸화 작용제 치료를 두 주기 더 받았고 다행히도 병은 거의 다 없어졌다. 이어서 동종조혈모세포 이식을 진행하기로 했다. 동종조혈모세포 이식은 본인의 조혈모세포가 아니라 면역유전자형이 맞는 다른 사람의 조혈모세포로 이식을 진행해서 항암치료와 함께 면역치료 효과를 기대한다. 다만 타인의 조혈모세포이므로 면역 불일치에 따른 부작용으로 위험성이 없지 않다. 정말 다행히도 환자는 큰 부작용 없이 이식을 잘 받았고 관해(寬解)를 획득했다. 앞으로 림프종이 재발하지 않고 환자가 건강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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