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악몽’ 잊었나…승부 조작범 48명에 면죄부 준 정몽규 축구협회장
우루과이전 직전에 ‘기습 사면’
막판 자수 최성국 등 포함 공분
팬들 “무관용이어야 될 일” 비판
한국 축구의 근간을 흔들었던 승부 조작범이 그라운드에 돌아오게 되면서 팬들의 비판이 쏟아진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클린스만호의 A매치가 열리기 직전 기습 사면으로 승부 조작을 저지른 50명 중 48명에게 면죄부를 줬다.
정 회장이 주재하는 협회 이사회는 지난 28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각종 비위 행위로 징계를 받은 전·현직 선수, 지도자, 심판 등 100명을 사면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사면 대상에는 2011년 프로축구 승부 조작에 가담했다가 제명됐던 이들이 대부분 포함됐다.
협회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는 “축구인들 사이에서 몇 년 전부터 오랜 기간 자숙한 후배들을 살려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르다는 판단 아래 기각됐던 안건이 이번에 통과된 것”이라고 말했다.
면죄부를 받은 승부 조작범 48명에는 대표선수 출신으로 승부 조작 사실을 부인하다가 자진신고 기간 막판에 ‘자수’해 거센 비판을 받았던 최성국이 이름을 올린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최성국은 프로축구연맹이 주최한 기자회견에서도 승부 조작 연루 사실을 부인했다.
협회가 2009년 이후 첫 사면에 나선 명분은 축구계 화합이다. 협회의 한 관계자는 “축구계 화합을 위해 오랜 기간 자숙해 충분히 반성했다고 판단하는 축구인들에게 다시 기회를 부여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축구계에서 승부 조작 사면이 시도된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프로축구연맹이 2013년 7월 최성국을 포함해 승부 조작범들에게 사면을 시도했다가 여론의 반발 속에 한 달 뒤인 8월 상위 단체인 협회의 불승인으로 번복된 사례가 있다.
당시 협회장이 바로 정 회장이다. 정 회장이 프로축구연맹 총재를 맡았던 2011년 승부 조작이 일어나 홍역을 앓았기에 당연한 결과로 풀이됐다.
정 회장은 10년이 흐르자 입장을 바꿨다. 협회 관계자는 “정 회장의 동의가 있었기에 이사회에서 사면이 통과된 것이 아니겠느냐”며 “어차피 이들이 현역 선수로 돌아올 수는 없다. 12년이면 충분한 죗값을 치렀다고 본 것 같다”고 말했다.
협회는 “모든 경기에서 승부 조작과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예방, 감독을 철저히 하겠다”고 강조했지만, 축구팬들은 스포츠의 근간을 뒤흔든 승부 조작만큼은 무관용이어야 한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협회는 이번 사면과 관련해 거센 반발을 의식한 듯 성폭력과 성추행 등을 저지른 이들은 심사에서 제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협회가 사면 대상이 누군지도 공개하지 않은 이상 그 주장도 믿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협회 관계자는 “승부 조작과 관련되지 않은 52명은 일반 사람들이 이름도 잘 모르는 인물들”이라며 “징계를 내릴 때도 그 대상이 누군지 공개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면 대상자를 공개할 수는 없다. 이번 사면과 관련해 추가 입장 공개나 기자회견은 당분간 계획이 없다”고 전했다.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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