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다, 배민, 그리고 쿠팡…그들이 같고 또 다른 것

김경락 입력 2023. 3. 29. 18:35 수정 2023. 3. 2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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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편집국에서] 김경락 | 경제산업부장

현대 사회에서 새로운 비즈니스가 빠르게 성장을 할 수 있는 배경 중 하나로 ‘규제 공백’을 꼽을 수 있다. 낡은 규제가 새 비즈니스의 등장을 가로막는다고만 생각하기 쉽지만, 거꾸로 규제가 없어 새 비즈니스가 고속 성장하기도 한다.

120년 전 오늘날과 같은 수준의 환경규제가 있었다면 헨리 포드는 자동차업에 진출하겠다고 쉽게 마음먹지 못했을 것이다. 포드는 마차에 맞춘 도로 속도 제한이라는 낡은 규제와 전투를 벌였지만, 동시에 온실가스 감축에 관한 고민은 하지 않은 채 매연을 내뿜는 내연기관차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변화한 상황에 맞춰 낡은 규제를 버리고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과정을 일컫는 ‘규제 재조정’은 혁신기술이 여럿 출현하는 ‘기술 변혁기’에 특히 중요하다. 지나치게 느리게 진행되거나 잘못된 규제 재조정이 불러올 부정적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할 새로운 산업·기술 출현을 가로막고, 성장동력을 갉아먹을 수도 있으며, 뜻하지 않게 노동자와 소비자에게 심각한 손해를 끼칠 수도 있다.

새 기술로 무장한 기업이 규제 재조정 시기를 마주하는 태도 또한 중요하다. 정확히는 규제 재조정 과정에서 노동자·소비자·정부 등 이해관계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에 임하는 자세가 그렇다. 최근 수년 새 우리 곁에 성큼 다가왔거나 현재도 가까이 있는 혁신 기업 세곳의 사례를 살펴보자.

두해 남짓 전 호출형 렌터카 운송서비스 ‘타다’의 운영사(VCNC)는 ‘혁신·기술 만능주의’에 빠진 듯한 모습을 보였다. 새 서비스에 대한 규제를 놓고 우왕좌왕한 정부·정치권도 꼴불견이긴 했으나, 기존 택시 운전사들의 불안은 가벼이 여기는 듯한 타다 운영사의 태도는 ‘오만한 혁신가’로 비쳤다. 결국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꽤 그럴듯한 서비스 타다는 사라졌고, 운영사는 큰 손실을, 소비자는 야간 택시 대란에 시달려야 했다.

엇비슷한 시기 배달앱 ‘배달의 민족’ 운영사 우아한 형제들은 좀 달랐다. 처음에는 독과점 시비가 억울한 듯 입을 삐죽거렸지만 ‘타다 학습효과’ 덕분인지 이해관계자와의 대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특히 개인사업자와 노동자 사이 애매한 영역에 놓인 배달기사 조합과 사실상의 단체협상을 정기적으로 진행한 점은 고무적이었다. 배달기사의 모호한 법적 지위를 빌미 삼아 그들의 처우 개선 요구를 외면했다면 배민은 숱한 논란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배민의 선택은 달랐고 그 과정을 거쳐 한 단계 성숙한 기업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

쿠팡은 또 어떨까. 일단 비즈니스는 승승장구 중이다. 전자상거래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간 데 이어 수많은 스타트업이 꿈꾸는 미국 나스닥에도 보란 듯 상장했다. 지난해 3분기엔 창업 이후 8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 전환하면서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의구심도 어느 정도 떨쳐낸 듯 보인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새로 등장한 과제에 대해 쿠팡이 보여주는 접근 방식은 아직은 미성숙한 스타트업의 그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고객정보 수십만건이 자사 밸류 체인에서 유출되는 사고가 났는데, 쿠팡은 ‘자사 서버나 네트워크에서 유출되지 않았다’ ‘개인정보보호법상 신고 요건을 준수하고 있다’는 입장만 반복할 뿐이다. 개인정보가 유출된 고객의 불안에 대한 이해나 밸류 체인 관리 책임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마도 이 사고를 고객과 시장, 정부 등을 여러 이해관계자로 넓게 조망하지 못한 채 법적 책임 여부라는 좁은 틀로만 바라보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시 규제 재조정의 문제로 돌아와보면, 개인정보보호법도 산업·기술 발달에 따라 규제 조정 숙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제3자 제공 동의 과정을 거친 고객정보를 오픈마켓 사업자로부터 넘겨받은 배달·입점 업체에서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책임을 어디까지 물을지 명확히 정해놓지 않았다. 이는 기술 발전과 비즈니스 모델의 변화 속도를 고려해 ‘여지’를 두려는 입법자의 고민이 녹아 있기 때문으로 짐작한다. 규제 공백 혹은 경직된 규제에 따른 부작용을 피하려는 입법자의 안간힘 말이다. 그런 맥락을 무시한 채 소비자 권익 침해 사고가 났는데도 ‘규제 공백’ 뒤에 숨어 ‘나 몰라라’ 한다면? 쿠팡이 부디 타다의 길이 아닌 배민의 길을 걸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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