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학생인권조례’ 폐지 예고, 다수에 의한 독재

한겨레 2023. 3. 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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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회가 지난 18일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다수에 의한 독재, 민주주의의 위험성은 독일이 직접 경험했다.

교권 추락을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다수 인권 존중", "성소수자 반대", "나쁜 인권 퇴출"이라는 해괴한 명분으로 조직된 극우 세력의 준동으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된다면,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부르짖는 극우 세력에게 자신들이 정당하다는 잘못된 신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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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서울특별시 제316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가 열린 서울시 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 반대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왜냐면] 김시은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3학년

서울시의회가 지난 18일 학생인권조례 폐지 조례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는 ‘지방자치행정에 대한 주민의 직접 참여를 강화해 지방자치행정의 민주성과 책임성을 제고하기 위해’ 만들어진 ‘주민조례발안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이뤄진 첫 조례안 발의이기도 하다. 더 많은 시민의 지방자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제도가 사회적 약자의 기본권을 옹호하는 조례를 폐지하기 위해 사용됐다. 이는 민주주의의 폭력성을 드러내는 한편 인권과 기본권 수호는 다수결에만 맡길 수 없다는 역사의 교훈과 헌법의 존재 이유를 일깨워준다.

흔히 민주주의의 기원을 고대 아테네에서 찾지만,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와 현재의 민주주의는 결정적 차이를 보인다. 현재는 ‘다수결에 의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없다’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에 일정한 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제한은 왜 발생했는가? 민주주의에 대한 제한은 다수의 독재로부터 개인의 권리를 지키고자 했던 자유주의의 성과이자, 다수가 아닌 사람들의 기본적 권익을 보호하는 장치가 없을 때의 참혹했던 살육의 역사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됐다.

미국 헌법의 아버지들은 대중의 정치 참여를 두려워했다. 충동적이고 상황에 따라 급변하는 대중의 위험성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론에 따른 급격한 정치적 변화와 다수에 의한 독재를 예방하기 위한 헌법 질서를 만들었다. 그 결과 의회와 대통령 선거에서 대중의 영향력을 축소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다수에 의한 독재, 민주주의의 위험성은 독일이 직접 경험했다. 히틀러와 나치는 민주적으로 평가받는 바이마르 헌법에 따른 선거로 합법적으로 정권을 획득했다. 나아가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등에 업고 헌법 질서를 무력화했다. 그 결과 유대인, 장애인, 집시, 성소수자 등 다양한 소수자를 독일과 유럽에서 말 그대로 박멸했다.

참혹한 대량 학살에 대한 반성으로 패전 뒤 독일은 민주주의와 다수결에 대한 통제를 선언한다. 독일 기본법 제1조부터 ‘인간의 존엄은 침해되지 아니한다. 모든 국가권력은 이를 존중하고 보호할 의무를 진다’라고 규정하고, 헌법재판소를 창설해 기본권 보장을 도모했다. 이는 민주주의와 다수결이 결코 침해할 수 없는 기본권의 존재와 그 중요성을 확인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1987년부터 헌법재판이 활성화하는 등 기본권 실현을 위한 헌법 질서가 공고해지고 있다. 기본권을 누려야 할 시민에는 예외가 없다. 그런데 누군가는 학생, 미성년자의 기본권 침해를 당연시한다. 자신의 종교에서 용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어디에나 존재하는 성소수자 학생·청소년을 삭제하려고 든다. 그렇게 조직된 표심과 다수결을 지렛대로 헌법에 따라 가치 중립적이어야 할 공공의 영역인 학교를 통제하려 한다. 이는 자유민주적 헌법 질서를 위협하고 오히려 학교를 둘러싼 사회문제의 해결을 방해한다.

교권 추락을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다수 인권 존중”, “성소수자 반대”, “나쁜 인권 퇴출”이라는 해괴한 명분으로 조직된 극우 세력의 준동으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된다면,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부르짖는 극우 세력에게 자신들이 정당하다는 잘못된 신호를 준다. 이는 다수결에 의한 폭정으로 달려가는 신호탄이 될 수 있다.

대다수는 무관심한 가운데, 조직된 소수가 민주주의를 위한 제도를 이용해 약자가 겪는 기본권 침해를 강화하려는 현재 상황은 위험하다. 아우슈비츠행 열차의 폭주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가 민주주의와 다수결에 의해 공적으로 승인되면서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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