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차라리 입 다물고 있는 게 낫다는 은행

김우보 기자 2023. 3. 2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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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부 김우보
[서울경제]

이달 서울 모처에서 주요 저축은행 인사들을 한데 만난 자리. 예금보험 한도 인상 문제가 거론되자 너나 할 것 없이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지난해 보험료 명목으로 낸 돈이 한 해 수익의 30%다” “올해부터 실적이 고꾸라질 텐데 보험료율마저 오르면 번 돈의 대부분으로 보험료를 메워야 한다”며 볼멘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늘어난 비용을 감당하기 버거워 결국 소비자에게 넘기면 누구 하나 득 볼 일 없을 것이라는 말도 뒤따랐다. 한데 자리가 끝날 즈음, 부쩍 열을 올리던 A 저축은행 임원은 “우리 은행이 이런 말 하고 다닌다고 말하지 말아달라. 괜히 찍히는 것보다 입 다물고 있는 게 낫다”며 다시 목소리를 낮췄다.

며칠 전 만난 한 시중은행의 리스크 담당자는 자리에 앉자마자 대뜸 보고서 하나를 내밀었다. A4 세 장 분량의 보고서에는 당국이 주도하는 ‘은행 개혁’의 문제점이 담겼다. 당국과도 논의해봤냐고 물으니 “은행권 의견을 듣는다고 해서 갔더니 발언하라며 준 시간이 5분이 채 안 됐다. 설사 우리가 얘기를 했다고 한들 ‘돈 잔치’의 주범으로 몰렸는데 약발이 들겠나”라고 했다.

금융 당국의 속앓이도 만만찮다는 얘기도 들린다. 당국에 오래 몸담았던 한 단체장은 “후배들도 업계 얘기를 충분히 듣고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신중히 접근하려 하면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 ‘업계랑 한통속 아니냐’는 식으로 위에서 핀잔을 주니 입장이 영 난처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금융권에 대한 개혁 드라이브가 거세다. 석 달 후에는 수십 년을 유지해온 그간의 틀을 바꿔 놓을 개선책을 내놓겠다고 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은행을 겨누니 가능할 듯도 싶다. 그래서인지 민이든 관이든 누구 하나 이견을 내놓기 어려워하고 있다. 오래 고민해서는 개혁의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일견 타당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옳으니 너희는 따라야 한다’는 식으로는 제대로 된 체질 개선이 이뤄지기 어렵다. 이견이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찍히기 싫어서 침묵을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김우보 기자 ub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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