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양곡법 개정안 ‘거부권’ 건의···윤 대통령 조만간 행사할 듯
정부가 29일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재의 요구권)을 행사해달라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공식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대통령이 요구한 당정협의를 거친 만큼 조만간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상된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법안 통과를 주도한 야당이 반발하며 정국은 더욱 경색될 가능성이 높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이라며 9분 동안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 국회 통과에 따른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발표장에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이 참석했다.
한 총리는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는 “우리 국민이 쌀을 얼마나 소비하느냐와 상관 없이 농민이 초과 생산한 쌀은 정부가 다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매수법’”이라며 “이런 법은 농민을 위해서도 농업발전을 위해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쌀은 우리 국민의 주식이며 농업과 농촌경제의 핵심”이라며 “정말 농업을 살리는 길이라면 10조원도 20조원도 충분히 쓸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식은 안된다”라고 강조했다.
한 총리는 “쌀이 남아도는데도 영구히 무조건 사들이는 것은 시장의 수급조절 기능을 더욱 무력화시킨다”며 “농산물 수급에 대한 과도한 국가 개입은 이미 해외에서도 실패한 정책”이라고 말했다.
한 총리는 또 “농업 경쟁력 강화와 청년 농업인 육성에 써야 할 재원을 남아도는 쌀 매입에 쏟아부으면 농촌의 혁신은 더욱 멀어진다”며 “쌀만 가지고 식량안보를 따지는 시대는 지났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문재인 정부와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주도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을 비판했다. 그는 “시장 원리를 거스르는 포퓰리즘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며 “이번 개정안은 지난 정부에서도 그런 이유로 이미 반대하였던 법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는 식으로 다시 추진하는 것은 혈세를 내는 국민들에게 도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총리는 그러면서 “지난 정부는 정책 실기로 쌀값 대폭락을 초래한 바 있다”며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 그리고 농업, 농촌, 농민의 삶과 직결된 일로 정치적 이익을 추구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한 총리는 윤 대통령에게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요구했다. 한 총리는 “실패가 예정된 길로 정부는 차마 갈 수 없다”며 “이에 정부는 우리 쌀 산업의 발전과 농업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 요구를 대통령께 건의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야당은 즉각 반발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한 총리 담화 발표 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은 적극적인 쌀 생산 조정을 통해 쌀 과잉생산 구조를 해소하여 우리 국민에게 필요한 쌀만 생산하기 위한 ‘쌀 가격 안정화법’”이라며 “한 총리는 쌀 시장격리 의무화만 강조하며 대통령 거부권을 운운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다음달 3일 (농해수위) 전체회의를 열어 윤 대통령에게 양곡관리법 거부권 행사를 건의한 정 장관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며 정 장관을 즉시 해임하라고 윤 대통령에게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 건의를 수용해 양곡관리법 개정안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전날 국무회의에서 추 부총리와 정 장관으로부터 거부권 행사를 건의 받고 “당정협의 등 다양한 경로의 의견 수렴을 통해 충분히 숙고한 뒤 결정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한 총리 담화는 발표 1시간 전 열린 국민의힘과 정부의 당정협의를 거쳐 나온 만큼 윤 대통령이 제시한 거부권 행사 조건은 속전속결로 충족된 모습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날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당정협의에서 “국회에서 어떤 방법을 쓰든 (법 통과를) 막아냈어야 하는데 소수 여당이라 어쩔 수 없었다”며 “헌법상 마지막 남아 있는 대통령의 재의 요구권을 행사해 달라고 간곡하게 요청드릴 수밖에 없다. 대통령님의 결단을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조만간 개최되는 국무회의에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헌법 53조에 따르면 대통령은 국회 의결 법안이 정부에 이송되고 15일 이내에 국회에 재의를 요구할 수 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지만 이날까지 정부에 이송되지 않은 상태다. 정부가 개정안을 이송받으면 국무회의에 재의 요구안을 상신하고 국무총리와 관련 국무위원들의 부서를 거쳐 윤 대통령이 재가하는 절차를 거치게 된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현 정부 첫 거부권 행사가 된다. 2016년 5월 전직 대통령 박근혜씨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 이후 7년 만이다.
국회 과반 의석인 169석을 갖고 법안 통과를 주도한 제1야당 민주당이 반발하며 여야 대립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헌법 53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한 법안은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국회에서 다시 가결할 수 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시 국회에서 다시 표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노루 피하려다 차가 밭에 ‘쿵’···아이폰이 충격감지 자동신고
- 파격 노출 선보인 박지현 “내가 더 유명했어도 했을 작품”
- 개그맨 성용, 21일 사망 항년 35세···발인 23일 거행
- 명태균 “오세훈 측근 A씨로부터 돈받아” 주장…오 시장측 “전혀 사실무근” 강력 반발
- ‘시국선언’ 나선 교수 3000명 넘었다
- “23일 장외집회 때 ‘파란 옷’ 입지 마세요” 민주당 ‘특정색 금지령’ 왜?
- 동덕여대 “남녀공학 논의 중단”···학생들 “철회 아냐” 본관 점거 계속
- 홍준표 “이재명 망신주기 배임 기소…많이 묵었다 아이가”
- 국회 운영위, 대통령실 특활비 82억 ‘전액 삭감’···야당, 예산안 단독 처리
- 불법 추심 시달리다 숨진 성매매 여성…집결지 문제 외면한 정부의 ‘게으른’ 대책 [플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