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톡] '양곡관리법', 대통령 거부권 행사 '신호탄' 되나

송연순 기자 2023. 3. 29.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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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방송법·노란봉투법 등 줄줄이 강행처리 예고
협치 등 의회민주주의 실종…여야 대치 고착화 우려
한덕수 국무총리가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양곡관리법 거부권을 대통령에게 공식건의하는 대국민 담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부는 최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과 관련,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를 공식 건의했다. 이에 따라 이르면 다음 달 4일 국무회의에서 재의요구안 의결 절차를 밟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9일 당정협의를 마친 뒤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정부는 쌀산업의 발전과 농업의 미래를 지키기 위해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 요구를 대통령께 건의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지난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권 단독으로 처리되면서 그동안 윤석열 대통령의 첫 거부권 행사에 이목이 쏠렸다. 당시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의회독재 폭거'라고 비판하며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상태다.

더불어민주당이 초과 생산된 쌀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각종 쟁점 법안도 줄줄이 본회의 직회부를 통한 강행처리를 예고한 상태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여야 갈등의 골은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여야 협치는 실종된 채 여소야대 국면에서 첨예한 입장차를 보이는 법안들이 야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되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악순환'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이재명 의원이 민주당 대표로서 추진한 1호 민생법안으로, 쌀이 수요의 3-5% 이상 초과 생산되거나 쌀값이 전년도보다 5-8% 이상 하락할 경우 정부가 쌀을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민주당은 쌀값 하락을 막아 식량자급률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나아가 식량안보를 확립하자는 취지라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여권에서는 이 법안이 쌀 초과생산을 부추겨 농업생산성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청년농 육성, 스마트팜 등 다른 농업 부문의 예산이 축소되는 결과를 가져온다며 반발하고 있다. 윤 대통령 역시 그동안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윤 대통령은 지난 1월 농림축산식품부 업무보고 모두 발언에서 "무제한 수매는 결코 우리 농업에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다음 달 4일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예상대로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이자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상시 청문회' 개최를 골자로 한 국회법 개정안에 반대한 이후 7년 만이다.

문제는 양곡관리법을 시작으로, 간호법과 방송법, 노란 봉투법 등도 줄줄이 거부권 대상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간호법 제정안은 오는 30일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고, 지난 21일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 민주당 단독으로 직회부 의결된 방송법 개정안도 30일 간 여야가 합의점을 찾지 못하면 야당이 4월 국회에서 강행 처리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달 9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도 야당 주도로 본회의에 직회부된 간호법 제정안은 기존에 의료법 내 '의사 진료의 보조' 수준으로 규정한 간호사 관련 내용을 별도로 분리해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업무·처우 등에 대한 국가의 책무를 명시했다. 방송법 개정안은 공영방송 이사 정수를 늘리고, 다양한 기관·단체들로부터 이사를 추천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여당은 민주당의 공영방송 영구 장악 시도라고 주장하며 반대하고 있다.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인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사관계조정법 개정안)도 본회의 직회부 수순을 밟을 것으로 예상된다.

개정안은 하청업체 노조가 원청과 직접 교섭할 수 있도록 하고, 파업 과정에서 불법이나 폭력 등이 없었을 경우 사측의 손해배상청구를 제한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는 노란봉투법이 다른 법과 배치되는 부분이 있고, 민법에서 하는 불법에 대한 배상 등을 무력화시킬 수 있어 헌법에 배치된다는 입장이다.

대통령실은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에 대해 필요할 경우 언제든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원칙론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의 가장 큰 명분은 '여론'이다. 대통령실은 국회에서 양곡관리법이 통과된 뒤 곧바로 "각계의 우려를 포함한 의견을 경청하고 충분히 숙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농림부는 양곡관리법 심사 과정에서 법안 개정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전문가 의견과 38개 농업인단체·협회와 전국농학계대학장협의회 등의 의견 수렴도 마쳤다.

대통령이 재의를 요구하면 국회는 본회의에서 재적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해당 법안을 재가결할 수 있다. 모든 의원(재적 299명)이 출석한다고 전제하면 200명의 찬성이 필요한데, 국민의힘 의석(115명)만으로도 저지가 가능하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염두에 두고 벌써 제2의 양곡관리법을 예고했다. 신정훈 민주당 의원은 "만약 양곡관리법을 폐기시킨다면 민주당은 다시 쌀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담은 법안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정부·여당이 아무리 민주당의 입법 독재를 주장한다고 해도 이해관계가 맞물린 이런 법안들에 계속해서 '대통령 거부권'을 행사하기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여야 협치가 사라진 가운데 거대 야당은 과반의석을 앞세워 법안을 강행 처리하고, 여당은 대통령의 거부권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반복될 경우 여야 간 대치 구도는 더욱 고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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