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액션·위트 있는 대사···‘1타 킬러’ 전도연의 ‘길복순’[리뷰]

오경민 기자 입력 2023. 3. 29. 16:26 수정 2023. 3. 29.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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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길복순>에서 길복순(전도연)은 임무 성공률 100%를 자랑하는 전설적인 킬러다. 넷플릭스 제공.

“자연사하시려면 착하게 사셨어야죠.” 영화 <길복순>은 길복순(전도연)이 청부살인을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복순은 임무 성공률 100%를 자랑하는 전설적인 킬러다. 업계에서 가장 큰손인 MK엔터테인먼트 소속이고, 그중에서도 가장 비싸고 까다로운 A급 사건들만 처리한다. 중학교 3학년 딸을 홀로 키우는 그는 “사람 죽이는 건 심플해, 애 키우는 거에 비하면”이라고 말한다.

31일 넷플릭스에 공개되는 변성현 감독의 영화 <길복순>은 그간 여러 영화가 다룬 ‘킬러들의 세계’를 색다르게 그려냈다. 무법을 일삼는 이들의 세계는 돈의 논리 아래 질서정연하다. 대기업부터 ‘구멍가게’까지 회사들은 규모에 따라 줄 세워진다. 회사 안에서도 직원들은 등급에 따라 성공 보수가 다른 ‘작품’을 배당받는다. 인턴들은 ‘데뷔’를 기다리며 연습을 한다. 복순은 이 모든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다. 그는 함께 술을 마시는 중소기업 직원들이 부러워하는 대상이자 업계 데뷔를 꿈꾸는 인턴들의 롤모델이다. 모든 회사와 킬러들은 업계가 정한 규칙 아래 일한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업계에서 퇴출당한다.

업계를 평정한 MK엔터와 잘나가는 에이전트 복순의 사이는 복순의 재계약을 앞두고 금이 간다. 사람을 죽이는 게 업인 복순은 딸 앞에서 떳떳치 못하다. 복순은 퇴사 전 받은 마지막 임무의 진실을 알고 마음이 흔들린다. 단 한번도 임무에 실패한 적 없었던 그는 ‘회사가 허가한 일은 반드시 시도해야 한다’는 업계 규칙을 어긴다. 복순을 중심으로 업계가 흔들리고, 그는 모든 킬러의 타깃이 된다.

연습생 김영지(이연·왼쪽)는 복순(전도연)을 롤모델로 삼고 데뷔를 꿈꾼다. 넷플릭스 제공.
중소기업 킬러들은 길복순(전도연)을 부러워한다. 넷플릭스 제공.

화려한 액션 장면은 극장에서 보지 못해 아쉬울 정도다. 과하게 잔혹하지 않고 깔끔하고 스타일리시하다. 합을 맞춘 안무처럼 흘러간다. 전도연은 수를 내다보며 다양한 방식으로 싸우는 복순의 액션을 강하면서도 유연하게 표현했다. 목숨이 오고가는 긴장 속에서도 대사는 위트있다. 빨간 도끼를 휘두르던 복순은 “미안, 마트 문 닫을 시간이라”면서 일을 마무리한다.

전도연의 존재감이 독보적이다. 업계 1위 킬러 복순의 호젓한 모습은 관객을 끌어당긴다. ‘흐린 눈의 광인’ 같다. 대담하고 초연한 그지만 딸 앞에서는 여유가 없다. 영화 전반적으로 인물과 세계관은 매력적이지만 관계나 감정선에 대한 설명이 부족한데, 복순의 감정과 행동만은 납득이 된다.

<길복순>은 구상 단계부터 전도연을 염두에 두고 쓰인 작품이다. 변 감독은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열린 제작보고회에서 “(전도연) 선배님을 모시고 무슨 영화를 찍을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필모그래피에 액션 영화가 크게 없었다. 그래서 장르를 액션으로 정하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말했다. 이어 “선배님과 대화를 나눴을 때 엄마 전도연과 배우 전도연의 간극이 매우 컸다. 그래서 배우를 킬러로 치환하면 ‘사람을 키우는 직업과 죽이는 직업’으로 모순적이고 아이러니한 상황이 나오겠다 해서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영화는 공정과 룰을 내세우면서 결국 승자가 기회와 특혜를 독식하는 사회를 은유한다. 모두가 공평하다는 듯 룰을 강조하던 MK엔터 대표 차민규(설경구)는 위기에 놓이자 규칙을 바꾸며 “내가 곧 규칙”이라 실토한다. “실력 따라 대우 다른 건 사회생활 기본”이라고 말하던 복순도 실은 대표 차민규의 편애를 받는 특혜의 대상이다. 복순 모녀는 결국 기울어진 세상의 가짜 규칙을 따르기보다 내면의 소리를 따르기로 결정한다. “아무도 모르면 아무 일도 없는 거야”라고 말하는 이에게 복순은 “내가 아는데? 쪽팔리잖아요, 나한테”라고 답하며 맞선다. 복순을 닮은 딸 재영(김시아)도 “떳떳하고 싶었어, 나한테”라며 행동의 이유를 설명한다.

복순(전도연)과 딸 재영(김시아)은 사이가 썩 살갑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서로 닮았다. 넷플릭스 제공.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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