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실질적 핵 역량 확보에 사활 걸 때다

입력 2023. 3. 2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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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일어나는 여러 가지 조건 가운데서 가장 필연적이고 결정적인 조건은 힘의 균형이 무너지는 경우다.

6·25전쟁 이후 북한은 '전인민의 무장화' '전국토의 요새화'라는 기치 아래 거대한 병영국가를 구축했고, 이에 맞선 우리는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한미연합군을 구성해 힘의 균형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 간 힘의 균형은 북한의 핵무장으로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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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주 예비역 대장, 前 제2작전사령관

전쟁이 일어나는 여러 가지 조건 가운데서 가장 필연적이고 결정적인 조건은 힘의 균형이 무너지는 경우다.

1949년 주한미군이 철수하자 그다음 해에 북한 김일성은 242대의 소련제 전차를 앞세우고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남침을 자행했다. 남북한 간 힘의 균형이 무너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다.

무너진 힘의 균형을 회복시켜 준 것은 미국이 주도한 유엔군의 참전이었으며, 이어서 북한의 입장에서 힘의 균형을 회복시킨 것은 중공군의 참전이었다. 양 진영 간에 힘의 균형이 이뤄지자 전선은 고착됐고, 2년여에 걸친 지루한 공방전 끝에 결국 휴전에 들어갔다.

6·25전쟁 이후 북한은 ‘전인민의 무장화’ ‘전국토의 요새화’라는 기치 아래 거대한 병영국가를 구축했고, 이에 맞선 우리는 한미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한미연합군을 구성해 힘의 균형을 유지해 왔다. 이 시기에 비록 군사적 긴장 관계는 있었지만, 쌍방이 모두 상대를 어찌할 수 없는 힘의 균형 상태를 유지했기 때문에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남북 간 힘의 균형은 북한의 핵무장으로 무너졌다. 북한의 핵 위협은 고도화·다양화했을 뿐만 아니라, 투발 수단의 안정성과 정밀성도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안타깝게도 북한의 핵 위협이 단계별로 고도화할 때마다 우리는 버릇처럼 북한의 능력을 과소평가하는 우를 범해 왔다. 북한이 미사일 도발을 강행하면 으레 전문가들이 등장해 ‘대남 시위용’이니 ‘대미 협상용’이니 하면서 평가절하 했지만 북한은 본인들의 계획에 따라 핵 능력의 성능 개량과 안정성 향상을 위한 실험을 계속해 온 것이다.

북한의 핵무력에 대한 힘의 균형은 재래식 전력으로 이룰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북한 핵 위협에 대한 한·미의 대응 전략은 확장억제인데, 이는 미국의 동맹국에 대해 제3국이 핵공격을 위협하거나 핵 능력을 과시하려 할 때 미국의 억제력을 이들 국가에 확장해 제공한다는 개념이다. 이러한 개념은 핵우산 정책보다 구체적이고 한·미 간에 논의할 수 있는 협의체가 가동된다는 점에서 진전된 개념이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 국민에게는 여전히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이 가졌던 의문이 남는다. 과연 미국은 파리 또는 서울을 보호하기 위해 LA나 워싱턴을 희생시킬 각오가 돼 있는가.

지금까지 미국의 확장억제 의지를 과시해 온 것은 전략폭격기나 항공모함 등 핵 투발 수단의 한반도 전개가 핵심이었다. 반면에, 지금까지 핵무기를 눈으로 본 한국의 당국자는 아무도 없었고 핵무기 운용 절차나 제원 등에 관한 정보를 공유한 적도 없다. 우리 국방부 장관이나 합참의장이 미국을 방문해 B-1B 전략폭격기의 날개를 만져 보는 모습을 공개하면서 확장억제 전략에 대한 신뢰를 가지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이제 우리는 사활을 걸고 실질적인 힘의 균형을 확보하기 위한 다양한 옵션을 미측과 협의해야 한다. 1980년대 말 북한의 핵 개발에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한반도에서 철수한 전술핵무기의 재배치, 나토식 핵공유, 그리고 적정 수준의 잠재적 핵 능력을 확보하는 방안 등을 공론화해야 한다. 우리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를 우리가 침묵한다면 그 누구도 우리를 위해 먼저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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