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뱅크데믹’ 본질도 신뢰 위기

이관범 기자 2023. 3. 29.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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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36시간 만에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사태로 촉발된 유동성 위기의 불길이 유럽의 대형 은행과 미국의 지역 및 중소형 은행으로 번지며 시장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스위스 최대 은행 UBS의 인수로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불씨는 독일 최대 은행 도이치뱅크로 옮겨붙었다.

AT1은 은행이 유동성 위기에 처하면 갚지 않고 상각할 수 있는 채권이지만, 유럽의 대형 은행이 실제로 그런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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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범 경제부 부장

불과 36시간 만에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 사태로 촉발된 유동성 위기의 불길이 유럽의 대형 은행과 미국의 지역 및 중소형 은행으로 번지며 시장을 공포에 몰아넣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뱅크데믹(Bankdemic·은행과 팬데믹의 합성어)’으로 묘사하고 있다. 시장에선 이번 은행발 위기의 성격을 ‘스마트폰 뱅크런(대량 예금 인출)’으로 규정한다. 몇 번만 터치하면 예금을 인출할 수 있는 디지털 금융 기술의 진화가 빛의 속도로 유동성 위기를 부추겼다는 측면에서다. 중앙은행의 가파른 기준금리 인상이 부른 자산시장의 붕괴가 근본 원인이라는 시각도 지배적이다. 부실관리 실패의 전형적인 사례라는 견해도 상당하다.

다들 일리가 있는 견해지만, 위기관리 측면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포인트가 있다. 연쇄 위기의 불길이 여전히 잡히지 않는 근간에는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고 있는 ‘신뢰의 위기’가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위스 최대 은행 UBS의 인수로 크레디트스위스(CS) 사태는 일단락됐지만, 불씨는 독일 최대 은행 도이치뱅크로 옮겨붙었다. 지난 24일 도이치뱅크 은행채의 5년물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한때 220bp(1bp=0.01%포인트) 이상으로 치솟았다. 2018년 이후 사상 최고치다. 이후 진정되긴 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황이다. CDS 프리미엄이 높다는 건 부도 위험 역시 크다는 뜻이다. 도이치뱅크가 도마에 오른 이유는 이번 CS 사태 때 휴지 조각이 된 AT1(신종자본증권·일명 코코본드)과 같은 채권 발행 비중이 높다는 측면에서 자본 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는 의심을 산 때문으로 보인다. 같은 이유로 바클레이즈와 스탠다드차타드, HSBC 등과 같은 대형 은행의 이름도 거론된다. AT1은 은행이 유동성 위기에 처하면 갚지 않고 상각할 수 있는 채권이지만, 유럽의 대형 은행이 실제로 그런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국내 금융시장을 강타한 ‘레고랜드 사태’와 닮은꼴이다. 지난해 9월 유원지 ‘레고랜드’ 개발업체인 강원중도개발공사의 어음 지급보증을 선 강원도가 만기를 하루 앞두고 발을 빼자 국내 금융시장은 삽시간에 얼어붙었다. 지방자치단체가 보증을 선 공기업 어음은 나라가 망해야 부도가 나는 국채에 준하는 신용도를 인정받는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그 신뢰가 송두리째 무너졌다. 정부가 유동성 공급에 나서면서 급한 불은 껐지만, 국내 채권시장을 배회하는 불신과 우량채 쏠림 현상은 여전히 가시질 않고 있다.

물론 도이치뱅크 위기설은 과장됐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10분기 연속 흑자를 내온 데다, 자산 규모도 엄청나다. 분명한 점은 한번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면 도이치뱅크와 같은 초대형 은행조차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기는 신뢰의 연결 고리가 약한 부위부터 끊어지며 시작된다. 금융은 수많은 시장 참여자의 자본이 모여 돌아가는 연속체다. 이 과정에서 디딤돌이 하나라도 망가지면 전체가 뿌리째 흔들린다. 정부 당국이나 시장 참여자 모두, 디딤돌 하나가 무너지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불신의 광풍’을 이번에 분명히 확인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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