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헌재, 과거에도 '검찰 수사권은 헌법상 권한 아니다' 결정했다?
법무부가 검찰의 수사권 근거로 지목한 '검사의 영장신청권'은 5차 개헌 때 도입
헌재, 삼청교육대·이명박 특검·국정농단 특검 사건 때도 '수사·소추권은 입법사항' 판단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법무부가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한다는 '검수완박'법(개정 검찰청법·형사소송법)으로 헌법이 보장한 검찰 수사권이 침해됐다며 헌법재판소(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다가 최근 각하된 가운데 헌재가 이미 여러 차례 '수사권은 헌법이 아닌 법률로 정하는 사안'이란 입장을 피력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헌재는 지난 23일 이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5 대 4 의견으로 각하하면서 다수 의견으로, "(검수완박법 입법은) 국회가 입법사항인 수사권·소추권의 일부를 행정권에 속하는 국가기관 사이에서 조정·배분하도록 개정한 것"이라며 "검사들의 헌법상 권한 침해 가능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이튿날인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헌재가 '검사에게 수사권이 헌법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수사권을 어느 기관이 행사하도록 할 것인지는 국회에서 정하는 것'이라는 결정을 "이미 이전에 네 번이나 했다"고 말했다.
실제 박 의원 지적처럼 헌재는 앞서 이미 네 차례나 검찰의 수사권은 헌법에서 보장된 것이 아니라는 결정을 내린 적이 있을까?
법무부 "헌법상 검사의 영장 신청권, 수사를 전제로 한 것…따라서 수사권은 검사 권한"
검수완박법을 둘러싼 논란에서 검찰 수사권이 헌법상 권한인지가 쟁점이 되는 것은 수사권이 헌법상 권한으로 인정될 경우에만 국회의 입법이 이를 침해했는지를 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수사권이 어느 기관에 있다'는 것이 법률로 정하는 문제라면 국회의 입법행위로 수사권이 비로소 '형성'되는 것이지 침해되는 것은 아니다.
법무부는 이런 맥락에서 헌법 12조 3항과 16조를 근거로 헌법이 검사의 수사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헌법 12조 3항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라고, 16조는 "주거에 대한 압수나 수색할 때는 검사의 신청에 의해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해야 한다"라고 돼 있다. 검사가 영장의 신청 주체라고 명시됐다.
검찰이 이렇게 영장을 신청하려면 그 이전에 범죄 혐의를 밝히는 수사가 전제돼야 하므로 이로부터 헌법상 검찰의 수사권이 도출될 수 있다는 게 법무부 측의 논리다.
헌재는 그러나 이번 결정에서 헌법의 영장신청권 조항은 "수사 과정에서 남용될 수 있는 강제수사를 '법률 전문가인 검사'가 합리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라며 "헌법상 검사의 영장신청권 조항에서 '헌법상 검사의 수사권'까지 논리 필연적으로 도출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검찰 영장신청권, 처음부터 헌법에 있던 내용 아냐…경찰 인권유린 막기 위해 신설
실제로 헌재의 이번 결정문을 보면 헌재는 1997년 3월에도 이런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헌재는 12·12 군사반란과 비자금 사건 등으로 구속기소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이 형사소송법 조항을 문제 삼아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의 결정문에서 검사가 영장 신청의 주체로 헌법에 들어가게 된 경위를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검사의 영장 신청 조항이 처음부터 헌법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제헌헌법 9조는 "체포, 구금, 수색에는 법관의 영장이 있어야 한다"라며 영장주의(수사기관의 강제처분은 법원의 영장에 근거해야 한다는 원칙)를 천명하고 있을 뿐 영장 신청의 주체를 따로 밝히지 않았다.
'검사의 신청'이란 요건이 헌법에 처음 들어간 것은 1962년 12월 5차 개헌 때였고, 이는 1961년 개정된 형사소송법을 반영한 조처라고 당시 헌재는 설명했다.
이는 그전까지 검사는 물론 경찰관도 영장을 신청할 수 있었던 것을 축소한 것이다.
1954년 제정된 형사소송법은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관할지방법원 판사의 구속영장을 받아 피의자를 구속할 수 있다"(201조 1항)라며 경찰에도 영장 신청권이 있다고 규정했다.
하지만 1961년 9월 형사소송법이 개정되면서 "검사는 관할지방법원 판사의 구속영장을 받아"란 조항에 따라 영장 신청권자가 검사로 한정됐고, 이런 내용이 이듬해 5차 개헌 헌법에 반영됐다.
헌재는 당시 결정문에서 검사 신청 요건이 5차 개헌 헌법에 추가된 취지는 "검사가 아닌 다른 수사기관의 영장 신청에서 오는 인권 유린의 폐해를 방지하고자 함에 있다"고 설명했다.
헌재는 이런 판단은 당시 상황에도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일제로부터 해방 이후 경찰이 이승만 정권의 독재권력 유지에 활용되면서 경찰력 남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진행된 3차 개헌에서 "경찰의 중립을 보장하기에 필요한 기구에 관해 규정을 둬야 한다"는 조항이 추가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당시 헌법 개정안을 논의한 국회 자료(국회 개정안 제1독회)에 따르면 경찰 중립 조항이 들어가게 된 배경이 "일당전제의 가능성을 방지하기 위해 제도적 장치로서…[중략]…경찰의 중립화에 관한 필요한 구조를 설치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돼 있다.
이 조항은 혁명의 열기가 아직 남아 있던 4차 개헌 헌법 때까지 유지됐다가 1961년 5·16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부가 추진한 5차 개헌 때부터 빠지게 됐다. 이후 경찰의 중립 조항이 헌법에 다시 들어간 적은 없다.
경찰력 남용의 폐해는 당시 발행된 신문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57년 3월 4일자 법률신문에 따르면 영장 발부 후 불기소 또는 석방된 인원이 70%가량에 달한 이유 중 하나로 경찰의 직접 영장 청구가 꼽혔다.
판사 출신인 방희선 전 동국대 법과대 교수는 '검사 영장 청구권의 법적 의의와 타당성 검토(下)'(2013년) 논문에서 검사의 영장 신청권이 헌법에 들어간 취지는 "과거 사법경찰관의 영장 청구에서 오는 구속 남발 등 인권 침해적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당시 개헌이 검찰을 정권 유지에 활용하기 위한 조처라는 해석도 있다.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의 자문위원회는 2018년 1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영장 청구권을 검사로 한정한 1961년 형사소송법 개정은 "군사정권이 검찰을 정권 유지의 하수인으로 활용하고자 검찰 권한을 강화해 주기 위해" 내린 조치라며 "이(검사의 영장 신청권)를 헌법 사항으로까지 끌어올린 것"이라고 봤다.
이 자문위는 다수의견으로 "독재의 잔재를 청산"하는 차원에서 헌법에서 검사의 영장 신청 요건을 삭제해야 한다며 해외 법제와 비교할 때 "검사에게 독점적 영장 청구권을 부여하는 외국 헌법은 없다"고 밝혔다.
헌법에 검사의 영장 신청권이 삽입된 전후 맥락을 살펴보면 그 배경은 검찰의 수사권을 헌법상으로 보장하기 위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셈이다.
헌재, 1997년 이후 4차례 '수사권은 국회 입법사항' 일관되게 판단
그럼 헌재는 정말 과거에도 '수사권은 헌법이 아닌 법률로 정할 문제'라고 판단한 적이 있었을까.
이번 권한쟁의심판에 대한 헌재 결정문을 봐도 이에 대한 답이 나온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수사권 및 소추권이 행정부 중 어느 '특정 국가기관'에 전속적으로 부여된 것으로 해석할 근거는 없다"며 1997년 8월 21일, 2008년 1월 10일, 2019년 2월 28일, 2021년 1월 28일 헌재의 결정 등을 통해 "행정부 내에서 수사권 및 소추권의 구체적인 조정·배분은 헌법사항이 아닌 '입법사항'"임을 반복적으로 확인한 바 있다고 밝혔다.
헌재가 사례로 든 1997년 8월 결정은 삼청교육대 피해자가 재정신청(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대해 고소·고발인이 고등법원에 그 타당성을 판단해달라고 신청하는 것)의 대상을 직권남용과 불법체포 등 일부 범죄로 제한한 형사소송법 규정이 위헌이라고 청구한 헌법소원에 대한 것이다.
당시 헌재는 이 사안을 판단하면서 그 전제로 "우리 헌법은 공소제기(소추)의 주체, 방법, 절차나 사후통제에 관해 직접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며 "형사소송에서 어떤 절차나 형식에 따라 공소를 제기하고 그에 대해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는 헌법 원리에 위배되지 않은 한 입법자가 정해야 할 입법정책의 문제"라고 밝혔다.
소추권(공소제기권)은 국회의 입법사항이라고 못 박은 셈이다.
2008년 1월 결정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시절에 제기됐던 주가 조작 등의 범죄 혐의를 규명하기 위한 특별검사법(일명 '이명박특검법')과 관련된 것이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특정 사건에 대해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를 실시할 것인지 여부, 특별검사에 의한 수사 대상을 어느 범위로 할 것인지는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가…[중략]…제반 사정을 고려해 결정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헌재는 또 2019년 2월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사건 선고 때도 2008년 1월 결정의 취지를 재확인했다.
이들 결정은 특별검사 수사를 실시할지 여부, 특별검사 수사 대상의 범위를 어떻게 할지 등은 본질적으로 국회의 재량이라는 의미로 풀이된다.
2021년 1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수처법)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사건 선고에서는 1997년 8월 결정 때와 비슷한 입장을 피력했다.
헌재는 당시 결정문에서 "우리 헌법은 수사나 공소제기의 주체, 방법, 절차 등에 관해 직접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으므로 입법자는 입법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국민 일반의 가치관 내지 법 감정 등을 고려해…[중략]…결정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결론적으로 헌재는 이번 결정을 빼고도 1997년 이래 20여년 동안 수사권과 소추권은 헌법이 아닌 법률로 정할 문제라는 일관된 입장을 네 차례 밝혀왔다.
법무부가 검찰의 수사권은 헌법상 권한이라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지난해 6월은 헌재가 '수사권은 국회의 입법사항'이라는 입장을 밝힌 지 1년 반도 안 된 시점이었다.
헌재의 이번 결정문에도 열거돼 있듯 현재 우리나라에서 수사권은 국회 입법에 따라 검찰뿐 아니라 수사처 검사(공수처법), 경찰(형사소송법), 해양경찰(해양경찰청법), 군검사(군사법원법), 군사경찰(군사경찰의 직무수행에 관한 법률), 특별검사(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에게도 부여돼 있다.
법무부 논리대로 검찰의 수사권이 헌법상 권한이라면 경찰, 군검사 등의 수사권과 이를 규정한 법률들이 모두 위헌 소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pseudoj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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