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대통령 업무보고 하루에만 1억원...깜깜이 업체 선정에 몰아주기 의혹까지
특정 업체에 계약 몰리고 1억원 이상 수의계약도
(시사저널=김현지 기자)
윤석열 정부의 2023년도 대통령 업무보고 당시, 복수의 정부 부처가 1곳의 공연·행사기획 업체에 '수의계약'으로 '일감 몰아주기'를 한 정황이 드러났다. 확인된 것만 6개 부처-1억7000여만원이다. 이 과정에서 국가계약 절차 위반, 부실 선정 등의 의혹이 제기됐다.
올해 새해 대통령 업무보고에는 최소 4억3000여만원의 예산이 사용됐다. 이는 대상기관 30곳 가운데 관련 내역을 공개한 14곳만을 합산한 것이다. 절반 이상이 관련 내역을 공개하지 않았다. 민간단체 보조금과 노동조합 회계 등에 대해 투명성을 강조한 윤석열 정부가 정작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정부 행사를 '깜깜이'로 처리한 것이다.
6개 부처, 특정 업체에 1억7000만원 몰아줘
시사저널 취재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취합한 자료를 종합하면, 공연·행사기획 관련 J업체는 새해 업무보고에서 정부 부처 6곳으로부터 용역을 받았다. 관련 내역을 공개한 기관 14곳 가운데 절반에 이르는 곳이 J업체와 계약한 것으로, 금액 면에서도 J업체가 가장 많았다.
외교부는 회의 기획·운영, 무대·음향장비 등을 위해 5240만원의 계약을 J업체와 맺었다. 외교부와 같은 날 업무보고를 한 국방부도 J업체에 5470여만원을 지출했다. 외교-국방부가 하루에 J업체와 계약한 금액만 1억원이 넘는다.
이밖에 질병관리청(1830만원), 국가보훈처(980만원), 통일부(1970만원), 행정안전부(2040만원) 등도 J업체에 행사 용역을 맡겼다. J업체가 이들 기관과 계약한 금액만 모두 1억7000여만원이다.
국가기관은 기본적으로 계약을 체결할 때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국가계약법)'에 따라 공개입찰을 해야 한다. 2000만원 이하 물품의 제조·구매, 용역 등에 대해서는 국가계약법 시행령에 근거해 수의계약을 할 수 있다. 여성·장애인·사회적기업 등과는 1억원까지도 가능하다. 기존 한도는 5000만원이었는데, 코로나-19로 시장이 침체된 2021년 한시적으로 기준이 완화됐다.
다만, 기획재정부의 계약예규(정부 입찰·계약 집행기준)에 따라 5000만원 이상 소액 수의계약을 체결할 때는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나라장터)에 견적서를 제출하는 등 절차를 따라야 한다. J업체와 5000만원 이상의 수의계약을 체결한 외교부와 국방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나라장터에서 이에 해당하는 견적서를 찾을 수 없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부가세 포함 전 추정가격이 5000만원 미만이어서 문제 없다"고만 밝혔다.
업체 선정 과정도 석연치 않다. 국방부 측은 "업체 평가서를 토대로 업체를 확인하는 작업을 공식적으로 하지 않았고, 행사 진행 구상 등이 담긴 기획안을 확인했다"며 부실 검증을 에둘러 인정했다.
J업체는 등기상 지난 2011년 설립됐다. 하지만 등기와 기업정보 등에 소개된 사무실 주소는 모두 제각각이었고, 각각의 주소지에는 다른 업체가 운영되고 있다. J업체 관계자는 "지난 2월 사무실을 이전한 것일 뿐"이라며 "작게 회사를 시작했지만 여러 행사를 진행해 왔다"고 했다. J업체는 제약사 기념행사, 아산정책연구원과 동북아평화협력포럼 등의 행사를 진행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도 복수의 부처와 수의계약한 배경에 대해서는 "열심히 일해 온 결과"라고만 답했다.
관련 내역을 비공개한 나머지 부처도 J업체와 계약했을 가능성이 높다. 국방부 측은 "이번 업무보고는 모든 부처가 동일 장소에서 순차적으로 진행되면서, 앞서 진행한 부처의 회의장을 최대한 유지할 수 있도록 같은 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대통령 업무보고 내역을 공개하지 않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관계자는 "준비할 시기가 짧아 앞선 부처가 계약한 J업체에 맡겼다"고 시인했다. J업체 관계자도 "지난해 연말부터 준비해 행사를 계속 진행했다"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원자력안전위원회, 국토교통부, 교육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이 외교·국방부(1월11일)보다 앞서 업무보고를 진행했다.(표 참조)
수천만원 사용하는 업무보고...서면보고하면 '0원'
윤석열 정부는 최소 4억3000여만원의 예산을 새해 업무보고에 지출했다. 업무보고 예산은 각 부처의 기본 경비에서 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내역을 공개한 14곳 외에, 공정거래위원회(2523만원)와 법무부(2150만원)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에 따라 경영·영업상 비밀과 관련한 사항이 공개되면 법인 등의 이익을 해칠 수 있다며 업체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농림축산식품부(1980만원), 해양수산부(1970만원), 문화체육관광부(3250만원), 환경부(금액 비공개) 등은 국제회의 전문의 I업체에, 여성가족부는(1270여만원)은 다른 업체에 용역을 맡겼다. 문재인 정부가 임명한 기관장이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와 국민권익위원회는 서면 보고를 했기 때문에 지출 예산이 없었다. 나머지 기관은 관련 내역을 모두 비공개했다.
물론 새해 업무보고에 예산이 들어간 경우는 과거에도 있었다. 기관 답변에 따르면, 국방부는 2019년과 2020년 각각 1980여만원과 3700여만원을 지출했다고 밝혔다. 법무부는 2018년 부처합동보고에서 1850여만원을, 문화체육관광부는 2018년 1700여만원을 지출했다. 행정안전부 역시 2020년 500여만원, 2021년 1000여만원을 사용했다. 농림식품축산부는 2022년 3300만원, 해양수산부는 8800여만원의 행사비를 지출하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코로나-19로 인해 일부 업무보고가 서면으로 대체됐다는 점을 감안해도, '억' 단위의 예산이 이번 정부만의 일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특정 업체에 계약을 몰아주는 등 이번 업무보고는 이례적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세금으로 지원된 민간단체 보조금과 노동조합 회계 등에 대해 투명성을 강조한 윤석열 대통령과 달리, 정작 윤석열 정부는 불투명하게 업무를 처리한 것이기도 하다. 익명을 요청한 정부 관계자는 "이번 업무보고는 일정조차 공유되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진행됐는데, 한 업체가 연속해서 행사를 맡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며 "해당 업체가 여러 부처의 계약으로 인해 몇 십억 단위의 돈을 가져가면 뒷말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행법상 최대 기준인 1억원을 넘긴 고액 수의계약 건도 있다. 지난 2022년 12월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2023년 경제정책방향 보고'가 진행됐다. 이날 기획재정부의 업무보고, 1차 국민경제자문회의 등이 동시에 이뤄졌다. 이때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는 H업체와 수의계약을 맺고 1억2800만원을 지출했다. 광고·홍보·전시 전문의 H업체는 지난 2017년 설립됐다. 업체는 기업정보에서 '기업프로모션·지역축제 기획 운영, 박람회' 등을 주 사업으로 소개했다. H업체의 주요 판매처는 CJ E&M(57%)이다. 국민경제자문회의 측은 H업체가 전문행사업체이기 때문에 수의계약을 맺었다고 답변했다. 고액 수의계약 배경에 대해서는 "이번 회의가 급하게 진행돼 준비할 시간이 부족했다"고 덧붙였다. 국가계약법 시행령상 예외 규정인 '긴급한 행사'였기 때문에, 금액 제한을 받지 않고 계약했다는 취지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정부 관계자는 "새해 업무보고는 연례적이어서 예측 가능한데, 이를 두고 '긴급한 행사'라며 예외로 볼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송기호 법무법인 수륜아시아 변호사는 "수의계약은 예외적으로 허용되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하다는 등의 사정만으로는 허용되지 않는다"며 "또한 하나의 업체가 계속해서 수의계약을 맺은 것 자체가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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