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셈법 따라… 전국선거구제·중선거구제·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Who, What, Why]
1~4대 국회 1인1표 소선거구제
6대총선 비례대표 ‘전국구’ 도입
9대땐 전국구 폐지후 33% 임명
13대부터 소선거구 단순다수제
17대총선때 1인 2표 제도 도입
21대에 준연동형 비례 방식으로
정당득표율 비례해 의석수 산출
50%만 각 정당 의석으로 배분
선거제도 개편은 올 상반기 정치권의 뜨거운 감자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진표 국회의장이 나란히 선거제 개편과 관련해 언급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추진력을 얻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이해당사자 간의 복잡한 셈법에 따른 저항이 만만치 않은 상태다. 정당별로도 입장이 갈리고, 수도권과 지방, 지역구·비례대표 국회의원에 따라 희망하는 선거제가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현 선거제는 비례대표제 도입(1963년), 중선거구제 도입(1973년), 소선거구제 환원(1988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2020년) 등 4차례 중대한 개정을 거치면서 만들어졌다. 하지만 승자독식, 지역독점, 사표 양산, 위성정당 등과 같은 문제는 풀어야 할 지상과제로 꼽힌다.
◇1948년 소선거구제 시작, 1963년 첫 비례대표제 도입 = 29일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광복 후 첫 국회인 제헌국회의 선거는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로 시행됐다.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는 작은 지역구 단위에서 1위 득표자를 선출하는 제도다. 당시 기록을 보면 200명을 선출하는 선거에 948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이때 채택된 선거 방식은 제4대 총선(1958년)까지 이어졌다.
제5대 총선(1960년)은 독특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이승만 정부가 물러나면서 의원내각제에 따른 양원제가 도입됐다. 의원내각제는 영국처럼 다수당이 총리를 내고, 정부 내각을 구성하는 제도다. 선거 방식도 복잡했다. 제5대 총선에서 하원 격인 민의원은 ‘소선거구 단순다수제’, 상원 격인 참의원은 ‘제한연기투표제’(2명 이상 이름을 기재할 수 있는 방식)를 사용했다. 민의원은 233석, 참의원은 58석으로 이뤄졌다. 참의원의 경우 ‘대선거구’를 사용했는데, 제주는 2인, 강원·충북 4인, 나머지 시·도에선 6∼8인을 선출했다.
5·16 군사쿠데타 직후 치러진 제6대 총선(1963년)엔 일종의 비례대표제인 ‘전국선거구’ 제도가 처음으로 도입됐다. 전국구 의석은 의원정수의 3분의 1이었다. 지역구 선거는 1구 1인 최다 득표제를 유지했고, 전국구 의석은 지역구 선거 투표율에 따라 배분했다. 최다 득표한 제1당에 유리한 방식이었다.
◇1973년 전국구제 폐지, 중선거구제 단기비이양식 도입 = 제9대 총선(1973년)에선 선거 방식이 또다시 변경됐다. 1972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주도한 10월 유신 이후 도입된 개정 선거법은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를 1구 2인의 ‘중선거구제 단기비이양식’으로 바꾸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단기비이양식은 하나의 선거구에 복수의 후보자가 복수 의석을 놓고 경쟁하게 되며, 각각의 유권자는 1명의 후보자에게만 투표함으로써 득표수 상위에서부터 해당 선거구 의석수만큼 당선자가 결정되는 제도다. 특정 정당의 독주를 막고자 유럽의 경우 아일랜드에서 도입하고 있는 선거제다. 문제는 제9대 총선에선 ‘중선거구제 단기비이양식’을 도입하는 동시에 전국선거구제를 폐지하고, 대신 전체 의석의 3분의 1은 ‘통일주체국민회의 간선’으로 선출하도록 했다. 대통령이 의석 3분의 1을 추천하고, 통일주체국민회의가 이를 추인하는 형식이라 사실상 국회의원 임명제였다. 이 제도로 당시 여당은 전체 의석의 3분의 1을 자동 확보할 수 있었다.
◇1981년 전국구제 부활, 1988년 소선거구제 회귀 = 제11대 총선(1981년) 때는 전국선거구제가 부활했다. 1979년 12·12 사태로 전두환 신군부가 집권한 이후였다. 신군부는 지역구 선거에선 ‘중선거구 단기비이양식’을 유지하고, 전국구 의석은 지역구 의석의 절반이 되도록 정했다. 이 또한 여권에 유리한 선거제도였다. 지역구 의석수 1위 정당은 전국구 의원 정수의 3분의 2를 얻었고, 나머지 의석은 제2당이 받았다.
제13대 총선(1988년)은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처음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였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은 그해 3월 선거법을 개정해 지역구 선거 방식을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로 다시 돌렸다. 이후 지역구 선거 방식은 현재까지 소선거구 단순다수제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전국선거구 의석 배분 방식은 계속해 변화했다.
제16대 총선(2000년)부터는 전국구 의석을 ‘비례대표’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 명칭이 오늘날에도 통용되고 있다. 제17대 총선(2004년)부터는 ‘1인 2표’ 제도가 도입됐다. 1표는 지역구 선거 후보를 대상으로, 1표는 비례대표 선출을 위해 정당을 대상으로 행사된다. 1인 1표 융합제(후보 1인에게 투표하고 결과에 따라 전국구 의석을 정당별로 나누는 방식)에 대해 2001년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함에 따라 취해진 후속 조치다.
◇2020년 위성정당의 탄생 = 상황이 달라진 것은 2019년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서 치러진 제21대 총선(2020년)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이해하려면 먼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알아야 한다. 연동형은 ‘비례대표 의석이 지역구 의석과 정당 득표에 맞춰 연동한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 지역구 의석은 적지만, 정당 득표는 많은 정당을 배려하는 투표제도다. 국내 현실을 적용하면 정의당 같은 정당이 유리해진다. 왜냐하면, 충성 지지층을 보유하고 있지만, 이들이 특정 지역에 뭉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서 지역구 선거에서 정의당은 당선자를 배출하기 힘겹다.
이처럼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거대 양당에는 불리한 제도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정부의 숙원 과제인 검찰개혁을 담은 사법 개혁안을 어떻게든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태워야 했는데, 2019년 4월 당시 국회 의석 분포상 민주당 자력으론 불가능했다.
이에 민주당은 보수정당을 제외한 나머지 정당들에 사법 개혁안과 선거제 개편 법안의 ‘빅딜’을 제시했고, 21대 총선을 앞두고는 ‘조국 사태’로 총선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던 민주당은 군소정당들과 소(小)연정을 구상하며 협상 끝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탄생시켰다.
기존 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정당이 받은 정당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 의석수인 47석을 배분하는 방식이지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각 정당이 받은 정당득표율에 비례해 의석수를 산출한 후 그 의석수의 50%만(100%가 아니라서 ‘준연동형’으로 불림)을 각 정당의 의석으로 배분하는 방식이다. 여기에 30석 연동형 캡(상한선)이 적용되면서 의석 배분방식이 복잡해졌다. 즉 30석 연동형 캡이란, 비례의석 47석 중 30석에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의석 배분방식을 적용하고, 나머지 17석은 기존의 비례의석배분 방식인 병립형을 적용한다는 것이다.
제도 자체가 워낙 복잡하다 보니 ‘누더기 선거법’이란 비판도 낳았다. 지역구 당선자가 많은 거대 정당에는 불리했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이에 비례대표 의석에서 손해를 보기 싫은 당시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은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을, 민주당은 더불어시민당을 창당했다. 정당의 모든 기능을 포기하고 오로지 선거에서 편법으로 더 많은 의석을 얻는 것만을 목적으로 한 ‘꼼수 선거’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해완 기자 paras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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