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밭춘추] 우리의 정원

심옥녀 소설가 2023. 3. 2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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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단지를 걷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이 멈추는 곳이 있다.

우리는 틈틈이 정원을 돌며 시든 화초에 물을 주고, 병든 나무에 방제했다.

9월에는 정원을 설계한 업체 대표를 초청해서 함께 단지를 돌며 그가 정원을 설계한 의도와 식재한 꽃과 나무의 이름, 그들의 생태에 대해서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12월에는 측백나무, 블루버드 등 정원 식물을 채취해 크리스마스 리스를 만들며, 우리 손으로 정원을 어루만지며 한 해를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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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옥녀 소설가

아파트 단지를 걷다 보면 무의식적으로 발걸음이 멈추는 곳이 있다. 그곳에는 지난 가을 심어놓은 수선화, 무스카리, 히아신스 등 추식 구근들이 겨울을 나고 있었다. 따뜻한 봄이 오면 노란 수선화부터 거친 땅을 비집고 올라와 해맑은 얼굴로 나에게 인사를 할 것이다. 행여나 누가 땅을 헤집고 구근들을 파낼까 싶어 바크로 잘 덮어 두었다. 여기는 추식 구근을 심은 자리란 표시다.

시골 태생인 필자는 도시에 살면서도 늘 자연을 동경했다. 이런 소망을 품고 살던 중에 새로 입주한 아파트에서 가드닝 동호회 회원을 모집한다는 글을 보고 얼른 회원으로 가입했다. 처음 자기 소개를 하는 자리에서 회원들은 식물을 좋아한다고 했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은 귀농은 못하니 아파트 정원이라도 힘닿는 대로 가꾸고 싶다고 했다. 회원 투표를 통해 '호(好)가드너스'라는 동호회 이름도 지었다.

'호가드너스'를 발족한 우리는 매달 한 번씩 정기 모임을 가졌다. 5월에는 라일락 전정 및 꽃씨 파종을 했고, 6월에는 단지 울타리에 심어놓은 넝쿨장미를 펜스에 묶고 마른 가지를 잘라 주었다. 우리는 틈틈이 정원을 돌며 시든 화초에 물을 주고, 병든 나무에 방제했다. 또 목수국 및 장미 삽목도 하고 파종해 두었던 하설초와 세이지를 단지 곳곳에 심었다. 7월에는 흙이 보이는 곳에 잔디를 심어 정원을 더욱 푸르게 만들었다. 9월에는 정원을 설계한 업체 대표를 초청해서 함께 단지를 돌며 그가 정원을 설계한 의도와 식재한 꽃과 나무의 이름, 그들의 생태에 대해서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11월에는 동호회 회원뿐만 아니라 원하는 이웃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추식 구근 심기 행사를 진행했다. 서른 가족이 넘게 참여했다.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각자 동 앞의 화단에 호미로 땅을 파고 정성스레 구근을 심었다. 공동주택에 살면서 자기 손으로 꽃을 피울 씨앗을 심었다는 게 모두 뿌듯하고 기뻤을 것이다. 12월에는 측백나무, 블루버드 등 정원 식물을 채취해 크리스마스 리스를 만들며, 우리 손으로 정원을 어루만지며 한 해를 마감했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정원을 보면 우주가 보인다고 했던가. 나는 가능한 많은 시간을 정원에서 보내려고 노력했다. 햇살이 좋은 날엔 정원에서 책을 보거나 산책을 했고, 가끔 이웃들과 함께 포트럭 파티도 즐겼다. 조경사 시험을 볼 것도 아니면서 단지에 있는 화초를 스케치하며 이름을 외웠다. 내가 애정을 갖고 돌보는 만큼 정원의 식물들도 무럭무럭 자라 나에게 사랑을 주리라 생각했다.

공동 현관을 나서면 내가, 우리가 정성껏 가꾼 아름다운 정원이 언제나 나를 반겨주었다. 정원이 푸르러질수록 나의 일상은 물론 나의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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