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비도쿄, 그립네요"…이재용이 즐겨보는 日 TV 프로그램 [정영효의 일본산업 분석]

정영효 2023. 3. 29. 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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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레비도쿄, 그립네요. 한국에서도 위성방송(BS)으로 (테레비도쿄의) '가이아노 요아케(ガイアの夜明け)'를 봅니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회의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일본 민영 방송국 테레비도쿄의 돌발 취재에 응하면서 한 말이다.

이 회장은 지난 2월 신입사원 간담회에서 "외국어 공부를 더 안 한 게 후회된다. 영어와 일본어는 하는데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라며 외국어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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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산업이 어때서'..日 강소기업 탐방 (2)
이재용 회장 "대지의 아침(日 경제 다큐) 시청한다"
경제 트랜드·日 중소기업 밀착 취재가 특징
日 1위 청바지원단 업체 가이하라데님
한국에 넘어가던 섬유업 주도권 지킨 비결


"테레비도쿄, 그립네요. 한국에서도 위성방송(BS)으로 (테레비도쿄의) '가이아노 요아케(ガイアの夜明け)'를 봅니다."

지난 1월 스위스 다보스회의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일본 민영 방송국 테레비도쿄의 돌발 취재에 응하면서 한 말이다. 이재용 회장은 일본의 사학 명문 게이오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 회장은 지난 2월 신입사원 간담회에서 "외국어 공부를 더 안 한 게 후회된다. 영어와 일본어는 하는데 잊어버리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라며 외국어 공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일본 TV 프로그램 시청 역시 일본어 능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이 회장이 언급한 가이아노 요아케는 장수 경제 다큐멘터리다. '대지의 아침'이라는 뜻이다.

"경제의 현장에서 분투하는 사람들을 통해 다양한 경제 뉴스의 뒷면을 쫓아갑니다"라는 소개글 답게 굵직굵직한 경제 이슈 뿐 아니라 '영세 공장의 드라마'와 같이 일본의 중소기업이나 장인들을 밀착 취재하는게 특징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대지의 아침을 즐겨보는 이유도 일본의 경제 트랜드는 물론 제조강국 일본을 지탱하는 중소기업의 현장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임을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다. 이런 중소기업 다섯 곳을 한꺼번에 탐방할 수 있는 기회를 지난 2월7~8일 일본외신기자클럽(FPCJ)의 프레스투어를 통해 얻었다.

한국경제신문은 한국 언론 가운데 유일하게 참가해 히로시마 지역의 강소기업 다섯 곳을 취재했다. 다섯 개 기업들은 모두 신발, 섬유, 금형, 정미, 양조 등 소위 사양산업이 주력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도 중국과 동남아의 저가 공세에 밀려 기업들이 진작에 사업을 접거나 인건비가 싼 해외로 이전한 업종들이다.

경쟁사들의 움직임과 반대로 인건비 비싼 일본에 남아서 세계 1위 또는 일본 1위를 지키는 비결을 연재한다.

첫번째 탐방 기업은 일본 최대 청바지 원단(데님) 제조사 가이하라데님이다. 가이하라데님은 일본 청바지 원단 시장의 60%를 점유하고 있다. 미국 리바이스와 갭, 일본 유니클로 등 유명 업체들이 가이하라데님을 사용한다.

1893년 창업한 가이하라데님은 기모노 직물, 그 가운데서도 남색 기모노 직물을 전문으로 만들던 기업이었다. 기모노 직물을 만들던 회사가 일본 최대 청바지 원단 업체로 변신한 것이다. 가이하라가 위치한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는 200~300년 전부터 면 생산량이 풍부한 지역. 면으로 실을 만들고 물을 들이는 염직물 사업이 융성했다.

가이하라의 위기는 일본인들의 의상이 기모노에서 캐주얼로 변하면서 찾아왔다. 가이하라는 1970년 업종을 기모노 직물 생산에서 데님 생산으로 바꾼다. 4대째 사장인 가이하라 마모루 사장은 가업을 기모노에서 청바지로 바꾸는 모험을 한 이유로 두가지를 들었다.

먼저 일본의 학생운동이 활발해진 1970년대 미국의 영향을 받아 청바지를 입는 젊은이들이 늘었다. 가이하라 사장은 앞으로 청바지의 시대가 열릴 것으로 확신했다.

다음으로 기모노든 청바지든 원단에 물을 들이는 사업이니까 가이하라가 잘 할 수 있다고 봤다. 당시 청바지는 가이하라가 100년 가까이 주업으로 삼았던 남색이 대부분이었다. 가이하라 사장은 '이거라면 우리도 할 수 있겠다'라고 확신했다.

시장의 변화를 예상하고, 자사의 주특기를 정확히 파악해 결합했다는 점에서 대단한 통찰력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섬유산업의 주도권은 이미 한국과 같은 신흥국들에 넘어가던 시기였다. 가이하라 마모루 사장도 "일본의 섬유산업이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할 때 데님을 만들기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가이하라데님은 위기를 어떻게 돌파했을까.

히로시마=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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