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07] 일반인의 자신감, 정치꾼의 열등감
“자신의 나라 말은 익힐 필요가 없다는 거죠? 아일랜드 말예요.” 옆에 있는 사람들도 아까부터 이쪽을 바라보고 힐문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가브리엘은 난처한 처지에서도 명랑한 표정을 지으려고 애를 썼으나 이마에까지 붉은 빛이 번져갔다. “우리나라에도 당신이 모르는 곳, 가보지 않은 곳이 많지 않나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우리나라에 질렸소. 지긋지긋하다고요!” 가브리엘은 갑자기 쏘아붙였다. 그녀는 발끝으로 서서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친영파!” - 제임스 조이스 ‘더블린 사람들’ 중에서
WBC 최종 우승컵이 일본 야구팀 품에 안겼다. “우리가 우승해야 아시아 다른 나라 야구도 자신감을 갖는다”며 결승전에 임했던 오타니 선수는 최우수선수상을 받자 “일본뿐 아니라 한국, 대만, 중국 등 세계 다른 나라에서도 야구가 더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한일전 패배로 속상했던 우리나라 야구 팬들도 오타니 선수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두 편이 박스오피스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코로나에 따른 해외여행 규제가 풀리면서 한국인 여행자가 가장 많이 찾는 나라도 일본이다. 일반인은 K 문화가 일본에서 사랑받는 것이 자랑스러운 만큼 그들의 문화도 편견 없이 즐긴다. ‘수탈과 배상’을 곱씹으며 정치인들이 내건 ‘비굴, 망국, 굴욕 외교’라고 적힌 플래카드만 거리마다 철없이 펄럭인다.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열리는 파티에 참석한 가브리엘은 왜 하필 런던에서 발행하는 신문에 글을 싣느냐는 비난을 듣는다. 국내가 아닌 외국을 여행할 거란 계획조차 힐난하던 지인은 ‘친영파’라는 말을 내뱉고는 떠나버린다. 가브리엘은 화가 나면서도 그를 연민한다. ‘아일랜드를 사랑한다고 떠들어대는 사람의 이면에는 자기만의 삶이라는 게 정말 있을까?’
현실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 “왕년에 내가” 하고 말한다. 가까스로 분에 넘치는 자리에 오른 사람이 “내가 누군지 알아?” 하고 거들먹거린다. 꿈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은 과거를 돌아볼 겨를이 없다. 자기 힘으로 어려움을 이겨낸 사람은 남을 탓하는 대신 이해하고 배려한다. 스스로 일어설 자신이 없는 사람만 “어떻게 나한테 이래? 사과해, 책임져”라는 요구를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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