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꿀벌 위해 식목일 앞당기기, 역사보다 과학으로 판단해야

기자 2023. 3. 29.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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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일이 더워지고 있다. 기상청의 과거 관측에 따르면? 1960년 식목일의 서울 평균 기온은 5.3도였다. 그러나 작년 식목일의 서울 평균 기온은 10.3도를 기록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분석에 따르면, 나무 심기에 가장 알맞은 기온은 6.5도다. 60여년 만에 식목일의 평균 기온이 5도나 오르며, 나무를 심기에는 너무 더운 날씨가 되었다. 나무의 종과 지역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른 봄 얼었던 땅이 풀리고 나무의 눈이 트기 전에 심는 것이 가장 좋다고 알려져 있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

이런 이유로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과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식목일을 기존 4월5일에서 세계 산림의날인 3월21일로 앞당기자는 ‘산림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산림청은 이에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4월5일은 역사성을 띠고 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날은? 조선시대 성종이 동대문 밖 선농단에서 직접 밭을 일군 날이며 삼국시대 신라가 삼국통일을 완수하는 등 역사성을 띤 날짜라는 것이다.

벌이 집단으로 폐사하는 일이 벌어지는 오늘날, 식목일을 역사에 근거하여 결정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특히 벌의 먹이가 있는 밀원면적이 50년간 무려 70%나 사라졌는데, 그 논리로는 기후위기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정책을 제시할 수 없다.

꿀의 원천이 되는 꽃과 나무, 즉 밀원식물이 벌의 수명을 결정짓는다. 벌은 해바라기, 유채 등 다양한 밀원식물을 통해 단백질과 탄수화물 등 필수 영양분을 섭취하고 기후변화, 농약 등 악조건을 견딜 수 있는 면역력을 확보한다. 밀원식물을 통해 필수 영양분을 적절히 흡수한 일벌은 수명이 평균보다 약 3주 더 길어진다는 연구도 나왔다.

한국의 밀원식물 부족은 개체수뿐 아닌 종류에 있어서도 큰 문제이다. 한국에서 생산되는 천연꿀의 약 70%가 아까시나무꽃에서 꿀을 딴 꿀벌을 통해 얻는다. 아까시나무는 주로 4~5월에만 꽃을 피우기에, 나머지 기간 대부분의 양봉벌은 설탕을 먹으며 생존하게 된다. 토종벌과 야생벌의 경우에는 더욱 심각하다. 토종벌은 혀가 짧아 아까시나무꽃에서 꿀을 빨아먹기 어려우며, 야생벌은 양봉인이 주는 설탕물마저 없어 줄어드는 밀원식물을 찾아 헤매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곧 벌의 면역력 저하와 영양 결핍으로 이어져, 응애와 기후변화 등 외부 요인에 더욱 취약해진다. 더욱이 기후변화로 기온이 높아지면서 응애의 생존력과 밀도가 더욱 높아져 악조건은 늘어난다.

쉬나무, 헛개나무 등 수목류뿐 아니라 메밀, 유채 등 초본류도 벌의 밀원 공급에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이러한 밀원식물을 양봉벌이나 야생벌이 비행해 다가갈 수 있는 2~3㎞ 반경 내에 풍부히 심는다면, 최근 문제가 되는 벌 피해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이 분석한 과학적 근거에 따라, 벌이 필요로 하는 다양한 밀원식물을 3월 중순에 심는다면, 벌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식목일을 앞당기는 것은 벌의 생존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정부도 미국과 유럽처럼 벌을 살리기 위한 범국가적 노력을 펼칠 필요가 있다. 현재 한국에서 벌 문제를 다루는 부처는 농림축산식품부이다. 벌을 꿀을 생산하는 ‘가축’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벌이 수분매개체로서 생태계를 유지·보전하는 역할을 하는 점을 고려하면 국무총리 산하에 ‘벌 살리기위원회’를 설립하여 환경부 등 타 부처의 협조가 활발히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이미 미국은 농무부와 환경부 장관 등이 공동의장을 맡는 연방 수분매개 건강위원회(Federal Pollinator Health Task Force)를, 유럽연합은 국가 간 협력이 이루어지는 유럽연합 수분매개체 계획(EU Pollinator Initiative)을 운영하고 있다.

산림청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56%의 시민들이 식목일 변경에 찬성했다. 올해 식목일부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내년에는 다시 검토해 볼 여지가 있는 것이다. 특히 벌 보호를 통한 국가의 생물다양성 제고를 위해서는 나무를 심기 좋은 시기에 일정 비율의 밀원식물을 심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생태계 파괴가 가속화되는 현시점에, 과학이 아닌 역사에 기반한 의사결정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다. 변해가는 환경에 생존법을 바꾸지 못한 생물은 도태된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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