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사우디-이란 베이징 합의와 중동의 역학구도

경기일보 2023. 3. 2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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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완 한국외국어대 융합인재학부 교수

지난 10일 중국 베이징에서 발표된 사우디아라비아(이하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 합의는 혼란했던 중동 정세의 안정이라는 희망적 서사를 가져옴과 함께 중동지역에서 중국의 부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 사우디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은 오랫동안 중동의 앙숙으로 갈등과 견제의 대상이 돼왔다.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 이념을 주변국으로 확산시키려는 이란의 움직임을 사우디 등 수니파 왕정 국가들이 심각한 체제 위협으로 간주했고, 2016년 사우디가 반정부 시아파 성직자 셰이크 니므르 바크르 알-니므르를 비롯한 4명의 시아파 주요 인사를 테러혐의로 처형한 뒤, 분노한 이란 시위대가 주이란 사우디 대사관을 습격한 직후 사우디는 이란과의 단교를 선언했다. 이후 최근까지 양국은 서로를 중동 지역 내에서 가장 위협적인 세력으로 규정하는 등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그렇다면 급작스러운 사우디-이란의 관계 정상화 합의의 배경은 무엇일까.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국가개혁프로젝트인 ‘사우디 비전2030’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국내외 위협요소의 제거가 전제돼야 한다. 빈 살만의 확고한 영향력 안에서 안정권에 접어들었다고 평가되는 사우디 국내 상황과는 달리 가장 큰 외부적 위협의 핵심인 이란과의 관계 정상화는 ‘사우디비전2030’의 성공을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인 것이다.

한편 2018년 미국의 이란 제재 복원 이후 더욱 악화된 경제난에 허덕이고 있는 이란의 입장에서는 이슬람 혁명 확산을 통한 중동지역 패권 확보 전략을 잠시 유보하고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실질적 경제이익을 택한 것이다.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는 중동 지역과 미-중 관계의 역학구도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베이징 합의 이후 사우디는 10년 넘게 단절했던 시아파인 알라위파가 통치하고 있는 시리아와의 관계 복원을 추진하고 있다. 사우디의 실세인 빈 살만 왕세자가 아랍 국가들 간에 안정적인 관계를 원하고 있는 점이 시리아와의 관계 회복을 앞당긴 요인이다.

베이징 합의로 가장 큰 수혜를 본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이번 베이징 합의로 중동 인프라 투자와 개발 진출의 확대와 함께 중동 석유와 가스의 안정적 구매를 확보했을 뿐 아니라 중동 관여를 줄이고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자 추진 중인 인도-태평양 전략에 집중하고 있는 미국에 큰 충격과 부담을 안겨줌으로써 중동지역 내 중국의 외교적 영향력을 확대시켰다.

사우디와 이란의 관계 정상화 합의가 갖는 함의를 통해 복잡하게 얽힌 중동지역 내 역학구도의 변화를 냉철하게 분석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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