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문법] 경험하지 못한 불확실성 시대의 도래

경기일보 2023. 3. 2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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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최대의 불확실성이 몰려오고 있다. 미국 재무장관 재닛 옐런은 미국민을 안심시키기 위해 지난 한 주 동안 네 차례나 마이크를 잡고 미국 은행시스템이 안전하다고 말했지만 매번 메시지에는 미묘한 변화가 있었다. 한마디로 입장을 결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자신감이 없어 보인다. 3월9일 실리콘밸리은행(SVB)의 대규모 손실이 공개되고 다음 날인 10일에는 잉글랜드은행이 SVB 영국 지점이 파산 절차에 들어갔다고 발표하자 일요일인 12일에 재무부와 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는 SVB 예금에 대한 무제한 보장과 은행들에 대한 자금지원 대책(BTFP)을 발표했다.

지난해 6월부터 (코로나 팬더믹 기간 풀었던 달러를 회수하기 위해 시행한) 양적 긴축(QT)으로 연준은 10개월간 약 6천억달러를 회수했다. 그런데 3월13일부터 22일까지 약 열흘 만에 4천400억달러를 다시 풀었다. 은행 위기의 확산 조짐이 보이자 3월14일 옐런과 파월은 월가를 상징하는 인물인 다이먼과 상의한 결과 11개 대형 은행이 퍼스트리퍼블릭은행(First Republic Bank)에 300억달러의 예금 지원을 하는 대신 연준은 은행들에 2조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그리고 19일 일요일에는 세계 5대 중앙은행 총재들은 스와프 창구 가동을 선언하고 당일 스위스 금융감독청(FINMA)은 UBS에 의한 크레디트스위스(Credit Suisse) 인수 승인을 발표했다.

발 빠른 대책들에도 불구하고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의 신용등급은 두 차례에 걸쳐 8단계나 강등돼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됐다. 그리고 주요 은행들의 주가는 계속 곤두박질치고 있다. 3월3일 이후 24일까지 JP모건 13%, 뱅크오브아메리카 21%, 웰스파고 23%, 모건스탠리 15%, 골드만삭스 12%, 씨티 18%, 찰스슈워브는 무려 31%나 빠졌다. 은행 및 금융회사 주가 하락은 해외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영국의 HSBC와 바클레이즈도 각각 14%와 22%, 캐나다 TD 13%, 프랑스 BNP파리바 21%, 스위스UBS 16%, 크레디트스위스 다음으로 거론되는 독일의 도이체방크는 27% 빠졌다. 참고로 같은 기간 미국의 기술주, 예를 들어 애플은 6%, 마이크로소프트 10%, 구글 13%, 엔비디아는 12% 상승했다.

현재의 은행시스템 위기는 기본적으로 정치 실패의 결과물이다. 은행은 고객의 예금이나 시장으로부터의 차입금 등으로 자금을 조달해 최소한 현금을 보유하고 나머지는 대출 및 (국채나 정부보증기관이 발행한 MBS 등) 신용도가 높은 유가증권에 운용한다. 사실상 정부에 자금을 빌려주는 이러한 방식은 현대 은행시스템이 만들어진 이래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런데 이 방식에 문제점이 드러난 것이다. 지금까지 가치의 안정성이 사실상 보장됐던, 이른바 무위험 자산으로 간주했던 정부 발행 증권들에서 가치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 문제점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은행에 존재한다.

최배근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

대형 은행조차 주가 하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배경이다. 그런데(같은 형식과 내용으로 반복하지 않음에도) 이번 위기에 대한 연준의 대응은 진부한 옛날 방식이다. 예를 들어 (고객의 마음이 떠나)사실상 시장에서 퇴출된 퍼스트리퍼블릭은행에 대해 은행의 대차대조표가 회복될 때까지 대출을 지원하겠다고 한다. 연준(미국)이 가진 달러 발권력을 동원하면 해결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금융위기 때는 달러 투입으로 문제 있는 자산을 도려냄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런데 달러의 발권력으로 은행시스템에 대해 무너진 신뢰 위기를 되돌릴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월가는 워싱턴이 모든 예금을 보장해주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모든 예금 보장은 미국 정부가 월가 탐욕질의 인질로 전락할 수 있고 그 결과 미국민의 달러에 대한 불신으로 비화할 잠재적 위험성이 존재한다. 언론이 옐런에게 예금 보장에 대해 명확한 메시지를 촉구하는 배경이다. 시장에서는 결국 전체 예금 보장은 불가피할 것이고, 그에 따른 달러 신뢰의 추락을 예상하며 금(과 심지어 암호화폐)에 대한 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새로운 대안이 등장하지 않은 가운데 기존 화폐와 은행시스템의 신뢰 위기는 무질서와 불확실성의 극대화를 의미한다.

현재 인류 세계는 안토니오 그람시가 정의한 ‘옛것은 사멸해 가고 있는데 새것은 만들어지지 않아 질서가 부재한 상황에서 온갖 병적인 증상들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그런 위기 상황으로 진입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현대 은행시스템과 달러의 신뢰 위기는 역설적으로 미국 엘리트들이 자초한 결과물이다. 급격한 금리 인상에서 비롯한 무위험 자산의 가치 손실은 미국의 군사 패권주의가 초래한 우크라이나 전쟁과 그에 따른 인플레이션의 나비효과이기 때문이다. 정치・군사적 셈법에 능한 엘리트들이 달러의 힘만 믿고 의도하지 않은 자해행위를 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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