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목요일 저녁엔 산책을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2023. 3. 2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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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한상엽

나에게는 목요일이 힘든 날이다. 이른 아침부터 온종일 진료와 회의를 마치고 저녁 무렵 사무실에 들어오면 멍한 상태가 된다. 스트레스 호르몬의 폭풍이 머리를 휩쓸고 있는 이 시간은 여러 쾌락원에 가장 취약해지는 때다. 이때만은 시원한 맥주 한 잔이 그립기도 하고, 때로는 평소 절제하려고 노력하는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와 비디오에 빠져들기도 한다. 지난 1년 동안 절주 중인 나에게는 위기의 순간이기도 하다. 온종일 주로 앉아서 일을 했으므로, 몸은 지쳤을 리가 없는데도 이 순간에는 더 편안한 자세로 앉거나 눕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근본적으로 우리 뇌는 몸의 피로와 마음의 피로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 이렇게 헝클어진 자세로 스마트폰에 빠져들면 도끼자루 썩는 줄도 모르고 몇 십 분의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일도 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메일을 읽는 등 하루의 책상 업무를 시작할 수 있는 시간이라, 정말 난감한 상황이 된다.

뒤늦게 찾은 피로의 해결책이 있었으니, 병원 앞 공원을 향하는 것이었다. 오전과 오후 내내 움직이지 못하고 눌려 있는 몸에 얹힌 정신적 스트레스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데에 신체 활동이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은 자연스럽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걷기도, 뛰기도 하며 때로는 나무에 기대어 보기도 하다 보면 하루 동안 마음속에 쌓인 여러 가지 부정적인 생각들이 마치 드라이아이스가 녹아 없어지듯 사라지는 경험을 할 수 있다.

사실, 이 피로감은 억눌러진 몸의 움직임과 과다한 정서적 소진이라는 불균형 상태가 만들어 낸 가짜 피로다. 단 한 시간만이라도 가만히 앉아서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혈액 내 지질 구성 등 대사적 지표나 염증 지표가 나빠지기 시작한다는 것이 연구들을 통해서 잘 알려져 있다. 심지어, 나는 진료실에서 뵙는 분들마다 바깥 신체 활동을 늘리라고 조언해오고 있지 않은가. “바깥에서 해를 보시며 많이 움직이셔야 우울감도 좋아지고, 수면의 질도 좋아집니다. 자연 비타민 D가 가장 좋습니다.” 몇 킬로미터를 움직여 신체적으로는 응당 피로감이 늘었어야 함에도, 몸과 마음은 새로운 활력을 얻는다. 저녁 산책을 통해 나의 목요일은 새로운 하루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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