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일방적 극장, 주입식 교실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2023. 3. 29.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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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박동우(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텅 빈 상자형 공간을 극장으로 꾸미라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무대와 객석을 배치할까. 아마도 십중팔구는 한쪽에 무대를 만들고 맞은편에는 객석을 둘 것이다. 마치 영화관처럼, 법정처럼, 교실처럼…. 액자틀 속의 그림을 한 방향에서 바라보는 그런 형태의 극장을 일방적 극장이라고 한다. 극장이 원래부터 그런 일방적인 공간이었을까. 인류 최초의 극장을 만든 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은 객석이 무대의 삼면을 둥글게 감싸는 반원형극장을 지었다. 고대 로마인들은 한술 더 떠 객석이 무대를 완전히 둘러싼 원형극장을 지었다. 콜로세움이 그것이다.

극장의 형태는 세계사적인 사건들에 따라 바뀌어왔다. 그 첫 번째 사건은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일이다. 극장과 본질적으로 반대편에 있던 교회는 극장을 죄악시했다. 중세 유럽 1000년 동안 새로운 극장은 지어지지 않았고 이미 있던 극장들은 채석장으로 변했다. 두 번째 사건은 십자군전쟁의 실패와 흑사병의 창궐이다. 유럽 중세는 르네상스에 그 자리를 내주었다. 다시 극장들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르네상스의 초기 극장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극장들을 실내에 옮긴 듯한 모습이었지만 절대군주 시대에 이르러 액자틀 무대의 일방적 극장이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그러한 일방적 형태의 극장은 영화의 발명에 힘입어 20세기 전 세계 극장의 주류가 됐다. 세 번째 사건은 제1, 2차 세계대전이었다. 거대한 전쟁을 겪으며 인류는 본질적 회의에 빠졌다. 극장과 공연의 본질에 관해 숙고하게 됐다. 그 결과로 일방적 극장에서 벗어나려는 다양한 시도가 20세기 중반에 이뤄졌다. 무대의 삼면을 객석이 감싸는 고대 그리스식 혹은 셰익스피어식 극장들이 세계 각국에 유행처럼 지어졌다. 무대와 객석의 형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상자형 극장들도 경쟁적으로 지어졌다.

우리나라의 극장은 어떨까. 상자형 빈 공간에 무대와 객석을 배치하라고 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왔을까. 영국과 한국, 일본에서 거의 같은 형태의 상자형 극장들이 각각 국립공연장으로 건축됐다. 영국 국립극장 소극장(1977년), 그리고 그것을 모델로 지은 한국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1993년)과 일본 신국립극장 소극장(1997년)이 그것들이다. 그 상자형 극장들은 어떤 형태로 사용돼왔을까. 영국의 경우 개관 이래 55%의 공연은 일방적 극장 형태를, 45%의 공연은 돌출무대, 원형무대, 환경무대 등 다양한 배치를 택했다. 일본의 경우 일방적 배치가 79%였다. 한국은? 무려 97%의 공연이 일방적 배치를 선택했다. 압도적이다. 그뿐 아니다. 2010년 이후 대학로에 신축된 30여개 극장은 1곳을 제외하고 모두 일방적 형태로 지어졌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2010년 G20 서울정상회의 폐막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국 기자들에게 질문권을 드리고 싶군요. 정말 훌륭한 개최국 역할을 해주셨으니까요. 누구 없나요?" 정적이 흘렀다. 다시 한 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질문을 권했을 때 한 기자가 손을 들었다. 중국 기자였다. 그래도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기자들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고 결국 질문권은 그 중국 기자에게 넘어갔다. 이 사건이 일방적 극장의 성행과 맥락을 함께하고 있지는 않을까. 일방적 극장은 스크린 속의 사건을 일방적으로 관객이 수용하는 영화관과 그 성격이 유사한 공간이다. 객석과 무대의 소통, 관객간의 유대감 등은 거의 0에 가까운 공간이다. 질문하지 않는 주입식 교실, 토론하지 않는 일방적 사회,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획일적 사회의 모습이 압도적 비율의 일방적 극장으로 나타난 것은 아닐까.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현상이 세계사의 네 번째 사건은 아닐까. 각 지역에 다수의 공공극장이 신축되고 있다. 그들 중 일방적 극장은 몇 퍼센트일까.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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