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진의 돈과 세상] [116] JP 모건의 형님 역할
어떤 사업에서 경쟁 상대가 사라지는 것은 희소식이다. 그러나 은행은 예외다. 한 은행이 파산하면 불안감을 증폭시켜 자칫 다른 은행까지 위험해진다. 그래서 은행들은 파산에 직면한 동업자를 발 벗고 돕는다.
은행이 운명 공동체라는 생각은 ‘은행(銀行)’이라는 말에 녹아있다. 은본위제도 때 ‘은행’은 집합명사였다. ‘은을 취급하는 업자 일행’이라는 뜻이다. 그 일행은 매일 어음교환소에 모여 어음과 수표를 교환했다.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되는 그 혼연일체의 공동 작업에서는 이름이 중요치 않다. 설립 순서를 나타내는 번호가 곧 이름이었다. 어떤 동네가 그 우편번호로 불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19세기 말 부산항에는 일본에서 온 제1, 제18, 제51 은행이 있었고, 지금도 미국에는 제5 은행과 제3 은행을 합친 제5/3 은행이 있다.
훌륭한 은행가는 은행이 운명 공동체임을 직감한다. 1907년 10월 맨해튼에서 세 번째인 니커보커 신탁회사가 파산하자 멀쩡한 은행까지 예금 인출 사태에 휘말렸다. 그 순간 JP 모건이 맨해튼의 은행장들을 자기 사무실로 불렀다. 방문을 밖으로 잠근 채 밤새 어르고 달래서 ‘긴급 유동성 기금’을 모았다. 그렇게 갹출한 3500만달러가 연쇄 부도 사태를 막았다.
1988년 텍사스주에서 가장 큰 퍼스트 리퍼블릭 은행이 예금 인출 사태에 몰렸다. 이번에는 방문을 잠그는 사람이 없었다. 그 은행이 파산 지경에 이르러서야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10억달러를 투입해서 정상화했다.
공교롭게도 똑같은 이름의 은행이 며칠 전 예금 인출 사태를 맞았다. 캘리포니아주에 있는 그 은행을 돕기 위해서 맨해튼의 JP 모건 체이스 은행이 전국의 11개 동업자를 불러 300억달러를 거뒀다. 은행이 흔들릴 때는 동업자끼리 돕는 게 급선무다. 그래야 예금 인출 사태 확산을 막고, 비용도 줄인다. JP 모건이 시범을 보였고, 그 후예가 그것을 재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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