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의 오마이갓]고등어 자반이 문득 비릿하게 느껴지는 건...독신 사제의 가족 문제 ‘훈수’

김한수 종교전문기자 입력 2023. 3. 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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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 가톨릭신문 13년 연재한 글 모아 ‘인생 수업’ 펴내
'인생 수업-가족편'을 펴낸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강석진 신부. /강석진 신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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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교 신자라 불교 신자답게 사는 거지, 뭐. 당신은 하느님이 살려 주셨으니 거기에 보답하는 거고, 뭐. 다른 거 있나?”

최근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강석진 신부가 펴낸 책 ‘인생 수업-가족 편’(생활성서)에서 읽은 구절입니다. 강 신부님이 13년간 가톨릭신문에 연재한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중에서 추린 글을 모았습니다. 이 구절은 부인은 가톨릭 신자, 남편은 불교 신자인 부부 중 남편이 한 말이랍니다. 아내는 10년 전쯤 암을 겪었는데 극적으로 회생했답니다. 은근히 아내가 불교 신자가 됐으면 하던 남편은 힘든 일을 겪은 아내를 보면서 ‘아내는 가톨릭, 나는 불교’로 서로를 인정하면서 평화롭게 부부 생활을 이어가고 있답니다.

아시다시피 가톨릭 사제는 독신입니다. 가정을 꾸리지 않지요. 그렇지만 책을 읽어보면 강 신부님은 탁월한 ‘가정 문제 전문가’입니다. 실제로 서강대에서 상담 심리를 공부하기도 했답니다. 강 신부님은 “저 스스로를 알고 싶어서” 상담 심리를 공부했다고 합니다. 강 신부님의 특기(?)는 ‘경청(傾聽)’인 듯합니다. 사목현장에서 들은 이야기, 들으면서 슬며시 제시한 해답이 일품입니다. 바둑이나 장기를 두는 사람보다 옆에서 보면서 훈수 두는 사람에게 수(手)가 잘 보이는 것과 비슷한 이치일까요. 책에 실린 몇 가지 에피소드를 소개합니다.

강석진 신부의 신간 '인생 수업-가족 편' 표지. /생활성서 제공

#고등어 자반이 갑자기 비린 이유는?

결혼 20년 된 부부. 신혼 때부터 아내는 남편이 좋아하는 고등어 자반을 저녁 반찬으로 내놓았다지요. 언젠가부터 남편 퇴근이 늦어졌고, 그럴 때마다 아내는 자반을 냉장고에 넣었다가 퇴근에 맞춰 다시 구웠답니다. 어느날 남편의 젓가락질 속도가 느려졌답니다. 이유를 물었더니 “좀 비릿한 것 같다”고 했다네요. 해답은 간단했답니다. 한 번 구운 후, 식어 버린 것을 또다시 기름에 구웠기 때문이었다네요. 강 신부님은 “그래서 알았어요. 사랑도 처음의 그 신선하고 싱싱한 감정과 느낌을 잘 유지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이라고 적었습니다.

전북 고창의 개갑순교성지. 순교복자 최여겸 마티아를 기리는 곳이다. /강석진 신부 제공

#순교자 이끝순

한국 천주교 초기 순교자들의 삶을 강의하러 간 강 신부. 수강자는 대부분 어르신들. 강 신부는 ‘아시는 순교자 이름’을 묻습니다. 침묵만 흐르다 한 어르신이 손을 들었습니다. “이끝순이요, 끝순이!” “이끝순이 어떤 분이신가요?” “작년에 죽은 우리 마누라 이름이요. 이그, 그 사람, 한평생 이 못난 사람 만나 정말 고생 많이 했지. 아파도 약도 한번 안 먹고 그렇게 살더만 끝내 나보다 먼저 하늘 나라로 갔구만요. 그러니 우리 마누라, 그 여편네가 정말 순교자지, 뭐.”

강 신부는 돌아오는 길에 “자식들을 잘 키우기 위해 자신의 인생길, 험난한 시간들을 묵묵히 견디어 내신 우리 시대의 부모님들이 순교자였다”고 되뇌이다가 휘영청한 달빛을 보고는 “저 달빛도 순교의 마음을 가졌나” 생각했답니다.

#호상(好喪)이란 없다

거의 100세에 가까운 어르신이 돌아가셨답니다. 고인의 며느리는 가톨릭 신자, 아들은 신자가 아니었답니다. 장례가 끝난 며칠 후 부부를 성당에서 마주친 강 신부의 한 마디에 남편은 큰 위로를 받았답니다. 강 신부는 “형제님, 큰일 치루셨네요. 마음이 많이 아프시죠? 어머니는 분명 극락왕생하실 거구요. 우리 함께 어머니께서 좋은 곳에 잘 가시도록 기도합시다”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남편이 위로받은 부분은 다름 아니라 ‘호상(好喪)이란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 장례 때 조문객들은 대부분 ‘호상’이라고만 했지 상주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묻는 이는 거의 없었답니다. 그래서 ‘슬퍼하면 안 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는 거지요. 강 신부는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아픔을 겪는 이들에게 그 어떤 ‘좋은 위로’로 슬픔을 잊게 하는 위로란 없다”고 적었습니다.

전북 고창의 개갑순교성지 전경. /강석진 신부 제공

#그런 아버지를 믿으라고요?

가족에 대한 기억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비행청소년을 선도하는 시설의 사제에게 강 신부가 들은 이야기입니다. 이 시설의 다음 단계는 소년원이랍니다. 그 신부가 교리 공부 시간에 ‘하느님 아버지’를 설명하던 중 갑자기 “에이 씨!”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간 아이가 있었답니다. 혼자 씩씩거리던 그 아이는 한참이 지나 이렇게 말했답니다. “신부님은 어릴 때 아버지라는 사람에게 죽도록 맞아 본 적이 있나요? 심지어 그 아버지란 사람으로부터 칼에 찔려 본 적도 있어요? 아버지란 사람에게 길거리에서 버림 받아 본 적도 있나요? 그런데 그런 아버지를 믿으라고요?”

#하늘나라에서 남편을 다시 만나라고요?

한 사제가 임종을 앞둔 할머니에게 약식으로 세례를 드리러 갔답니다. 자녀들은 모두 가톨릭 신자였답니다. 기본적인 교리를 알려드리고 각각 “믿습니다”라고 대답하면 세례를 드리는 것이지요.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사래를 치며 세례를 거부하는 뜻밖의 사건(?)이 벌어졌답니다. 사제가 할머니에게 “이제 세례를 받으면, 하느님 나라에 꼭 가실 거예요. 그러면 거기서 할아버지를 다시 만나 영원히 행복하게 사세요”라고 하자 벌어진 일이었답니다. 생전에 두 분 사이가 안 좋았던 거지요. 결론은? 세례 잘 받고 임종하셨답니다. 비결은 할머니의 자녀 사랑이었습니다. 자녀들은 “엄마가 세례를 받으면 우리 모두 엄마가 있는 곳에 따라갈 거야. 엄마가 사랑하는 손자 손녀들도 다 그곳에 갈 거야. 그래서 엄마, 우리 다시 만나, 그리고 영원히 함께 살자”고 말씀드렸다지요.

전북 고창의 천주교 개갑순교성지. 강석진 신부는 이곳에서 순례자들을 위한 영적 봉사를 하고 있다. /강석진 신부 제공

강 신부님은 현재 전북 고창의 ‘개갑 순교 성지’에서 살고 있습니다. 1801년 순교한 최여겸(마티아)을 기념하는 성지입니다. 지난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때 복자(福者)로 시복된 분입니다. 저도 아직 가보지 못한 성지인데 2년 전 부임한 강 신부님이 아름다운 성지로 조성하고 계시네요. 강 신부님이 보내주신 사진을 함께 게재합니다. 책에는 따뜻한 사연, 가슴 아픈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가족 편’에 이어 2편도 곧 나온다니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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