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의 의결만 남은 방송법 개정안… 정치독립 숙원, 이번엔 풀릴까
대통령 거부권이 변수
이번에야말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이라는 숙원이 풀릴 수 있을까. 지난 21일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된 방송관련법 개정안이 이제 마지막, 본회의 의결 절차만을 남겨두고 있다. 아직 여야가 합의를 거쳐 본회의 부의 여부를 결정해야 하지만, 사실상 9부 능선을 넘은 셈이다. 공영방송의 지배구조 개선을 골자로 한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은 그동안 여야를 가리지 않고 숱하게 발의됐으나 상임위 통과조차 쉽지 않았다. 이번에도 상임위 통과 이후 본회의 직회부까지 109일이라는 시간이 걸렸지만, 처음으로 본회의 문턱에 다다르며 언론계 기대감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공영방송이 정치권력의 입김에서 자유로워야 한다는 요구는 언론계에서도 대표 격인, 해묵은 과제였다. 방송의 공익성에 대한 관심은 방송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부터 싹이 텄지만, 2000년 방송법 개정 시기와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시기를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제도 개선 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가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를 통합해 방송통신위원회로 개편하고 여야 간 7:4, 6:3 이사 추천 관행을 만들면서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은 언론 개혁의 주요 과제 중 한 가지로 부상했다. 당시 정치권 입김이 강한 공영방송 이사회 구조에서 KBS 이사회에 의한 정연주 사장의 해임, 또 KBS 및 MBC의 대규모 파업이 연쇄적으로 일어났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사회적 요구가 커지며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선 당시 박근혜 후보도, 문재인 후보도 모두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성 확보 방안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다만 박근혜 정부 때도 이후 문재인 정부 때도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과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때마다 국회에 관련 특별위원회가 출범했지만 기간만 연장됐을 뿐 매번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종결됐다. 야당일 때는 공영방송 지배구조를 개선하자고 강조하다가 여당이 되면 조용해지는 일이 정권교체 때마다 국회에서 계속 반복됐다.
그나마 20대와 21대 국회 들어 다양한 방송관련법 개정안들이 발의되면서 논의는 조금씩 진척되기 시작했다. 이 당시 개정안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는데, 대표적인 게 이사회 정원 확대와 이사의 자격요건 강화 등이다. 이사회 정원을 현재 11인에서 13인 또는 15인으로 증원하는 내용(KBS의 경우), 정치적 성향보다 방송에 대한 전문성을 우선적으로 반영해 이사를 추천하도록 하는 내용 등이 여러 개정안에서 제안됐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4월 발의된 정필모 민주당 의원의 개정안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촉발시켰다. 민주당 당론으로도 채택된 이 법안은 독일식 평의회를 모델 삼아, KBS와 MBC, EBS 이사회를 사회 각 분야의 대표성을 반영한 25명의 ‘공영방송운영위원회’로 확대하자는 내용을 담았다. 사장 선출과 관련해서도 ‘시청자사장추천평가위원회’가 복수의 사장 후보자를 추천하면, 재적 운영위원 3분의 2 이상의 득표로 결정하는 ‘특별다수제’를 제안했다. 이 법안은 국민동의청원에 힘입어 운영위원 수를 21명으로 줄이는 등 한 차례 수정돼 지난해 11월29일 과방위 소위원회를 통과했고, 12월2일엔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간 뒤엔 100일 넘게 계류되다 지난 21일 과방위 야당 의원들의 단독 의결로 드디어 본회의 문턱을 밟게 됐다.
이번 방송관련법 개정안은 앞으로 약 3주간 논의 뒤 여야 간 합의를 거쳐 본회의에 부의된다. 만약 이 기간 내 부의가 무산될 경우 국회는 본회의에서 무기명 투표로 해당 법안의 부의 여부를 결정한다. 현재 민주당 의석수가 169석이기 때문에 법안은 무난하게 통과될 것으로 보이지만, 국민의힘의 요청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도 있어 그 어느 때보다 긴장감이 높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로 돌아온 법안을 다시 의결하기 위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에 3분의 2 이상 찬성이라는 훨씬 까다로운 의결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한 법안 통과는 불가능하다. 해묵은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렵사리 잡은 기회가 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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