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눈] 법치주의와 사법의 책임
위법하지만 목적의 정당성 인정
재판부 스스로 신뢰 떨어뜨려
진실 중요해도 불법적 방법 안돼
그날 황희철 대검찰청 공판송무부장의 붉게 상기된 표정은 여전히 기억에 선명하다. 황 검사장은 사소한 실수를 문제 삼아 유죄가 유력한 증거를 채택하지 않는다면 범죄 수사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라고 역설했다. 축구 경기도 거론하며 골 에어리어가 아닌 지역에서 반칙할 때 페널티킥을 준다면 경기 자체가 의미가 없다고도 했다. 2007년 10월29일 김태환 제주도지사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공개 변론에서다.
이렇게 장황하게 옛날 기억을 끄집어낸 것은 2019년 3월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한 검찰의 긴급 출국금지 조치에 대해 “위법하지만 직권남용이 아니다”라는 법원 판결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수사기관의 적법 절차 준수의 중요성을 강조한 법원 판단으로, 김학의 사건 최근 재판과 여러모로 대비된다고 생각해서다. 김학의 개인에 대한 평가를 거론하지는 않겠다.
서울중앙지법은 지난달 김 전 차관을 긴급 출국 금지한 것은 위법하지만, 당시 긴박한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직권남용죄로 처벌하긴 어렵다며 관련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김 전 차관 출국금지는 재수사가 임박한 상황에서 일반인 출국을 저지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목적이 정당하다면 어느 정도 절차적 일탈은 넘어갈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재판부는 그러나 “김 전 차관에 대한 혐의는 소명자료로 객관적·합리적으로 뒷받침되는 상당한 정도에 이르지는 못했다. 긴급 출국금지는 범죄 혐의의 상당성 요건을 갖추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위법하다”고 밝혔다.
근대국가 통치원리 중 하나인 법치주의는 군주의 자의적 통치를 제한하려는 것에서 출발하고 핵심은 적법 절차 준수에 있다. 우리 헌법과 법률은 다양한 장치와 조항으로 이 정신을 반영하고 있다. 목적은 국민의 인권과 권리,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근본적 자유인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는 검찰권도 같은 맥락에서 자제되어야 하고, 적법 절차에 따라 행사되어야 한다는 명제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형사소송법도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를 제한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1995년 구속영장실질심사 제도를 처음 도입하고, 공판중심주의 재판을 받아들이고, 검찰 조서의 증거 능력을 제한한 것도 같은 의미다.
검찰 공소장도, 법원 판결문도 실체적 진실을 완벽하게 구현할 수 없다. 우리는 항상 진실과 팩트 앞에 겸손해야 한다. 그래서 재판은 적법 절차의 기반 위에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실체적 진실이 중요해도 불법적 방법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형사소송의 정신을 세계 대부분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익의 대표자(검찰청법)인 검사가 실정법을 어겼지만, 사후적 판단이라는 이유로 직권남용에 무죄를 선고하고 해당 검사에게 선고유예를 결정해 사실상 면죄부를 줬다. 법원이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이우승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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