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수십만명 시위... 네타냐후, 사법장악 입법 연기
사법부 권한을 대폭 약화하고 정부 여당의 통제 아래 두려는 이스라엘 우파 연정의 ‘사법 장악’ 시도가 입법 독재를 우려한 범(汎)국민적 반발에 막혀 중단됐다. 우파 연정은 야당과 협의를 통해 5월 중 다시 관련 법 개정을 시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야당이 “법안 자체를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가운데, 극우 성향 민족주의 세력을 중심으로 우파 연정을 옹호하는 시위 움직임까지 일면서 이스라엘의 정국 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7일 오후(현지 시각) 의회(크네세트)에 출석, “다음 회기까지 ‘사법 개혁’ 입법 절차를 연기하겠다”고 발표했다. 전날 사법 장악에 반대하는 국방장관을 전격 해임한 뒤, 이스라엘 전역에서 수십만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밤샘 시위가 발생하자 한발 물러선 것이다. 우파 연정은 이번 사법 장악 시도를 ‘사법 개혁’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스라엘 야당과 시민단체가 올해 초 시작한 사법 장악 반대 시위는 지난 3개월 새 대학생과 일반 시민, 예비군, 노동조합 등으로 급속히 확산해 왔다. 네타냐후 총리는 “(사법 개혁을 둘러싼) 사회적 분열이 내전을 연상시킬 수준”이라며 “더 큰 충돌과 분열을 막기 위해 큰 합의를 시도하겠다”고 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새벽 정부 주요 장관 및 여당(리쿠드당) 핵심 당직자와 비상 회의를 갖고 관련 입법 절차 중단을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연정 파트너인 오츠마 예후디트(유대인의 힘) 등 극우 성향 정당들이 강력 반발하면서 내부 진통이 계속됐다.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했던 발표가 9시간 이상 늦춰지기도 했다. 오츠마 예후디트 대표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사법 개혁을 중단할 경우 연정에서 탈퇴하겠다”고 경고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에 “사법 개혁을 중단하자는 게 아니라 연기하자는 것”이라며 그를 설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츠하크 헤르초그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의 발표 직후 “총리의 결단을 환영한다”며 “여야가 모두 책임감을 갖고 합의해 달라”고 당부했다. 미국 백악관과 영국 외무장관도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전국 각지에서 수십만명이 쏟아져 나와 총리 관저 진입을 시도하는 등 파국으로 치닫던 반정부 시위는 일단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날 텔아비브에 모였던 시위대 10만명은 일부 시위를 벌이다 해산했고, 노동 단체들은 총파업 일정을 잠정 연기했다.
크네세트의 다음 회기는 5월 초로 예정돼 있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을 기념하는 유월절(4월 5~13일)을 전후로 휴회한다. 네타냐후 총리는 앞으로 한 달간의 협상 시간을 확보한 셈이다. 이스라엘 현지 매체들은 “그러나 우파 연정과 야당 간 입장 차가 커 합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와 메라브 미카엘리 노동당 대표 등 야당 지도자들은 “사법 장악 입법을 취소하거나 법안 자체를 폐기해야 정부와 대화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베니 간츠 국가통합당 대표 정도만 “안 하는 것보다 늦어지는 게 낫다”며 협상에 긍정적인 입장이다.
연정 내 극우 세력은 “한 치도 물러설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요르단강 서안에서의 정착촌 확장, 정통파 유대교도 마을의 자치권 확대 등이 대법원의 반대로 좌절되는 상황을 겪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우파 연정 지지 세력이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며 “극우 시오니즘(유대민족주의) 단체와 유대교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사법 개혁 수호를 위한 시위가 확산하면서 반대 세력과 충돌이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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