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고위험 빈집’ 4,600채…“지방소멸 악순환”

오정현 2023. 3. 28.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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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전주] [앵커]

KBS전주방송총국은 '지방소멸 연중기획' 두 번째 주제로 빈집 문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전라북도에 방치된 빈집 만 5천 채 가운데 30%가, 붕괴 등 안전을 걱정해야 하는 '고위험 빈집'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사회적 비용은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에 또다른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오정현 기자입니다.

[리포트]

["뒤에도 전부 다 빈집이야, 오래됐지."]

["무서워요, 둘이 있으면. 어머니 이사를 가세요. 다른 데로."]

언제 사람이 다녀갔는지 가늠도 힘든 곳.

널브러진 잡동사니 위로 퀴퀴한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50년 전엔 시끌벅적한 술집이었습니다.

다방이 됐다가 국숫집으로 쓰일 때까진 사람 손을 탔지만, 그 뒤로 집은 버려졌습니다.

["나무가 콘크리트를 뚫었어."]

바로 옆집도 십수 년째 사람이 살지 않습니다.

살림을 다 들어내 회색 뼈대만 남은 폐가.

이웃집들이 흉물스레 변해가는 걸 노부부는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처음엔 이웃들이 떠난 자리가 그저 아쉬웠으나, 이 빈집들은 곧 고민거리가 됐다고 말합니다.

날마다 범죄를 걱정해야 했고 날아드는 석면 가루도 참기 어려웠습니다.

[김동래/김제시 요촌동 : "여기도 석면 있잖아, 슬레이트가. 이런 데 밑으로 말도 못해요."]

이웃들처럼 떠나자고 마음먹은 적도 있습니다.

지방소멸의 결과물인 빈집이 다시 소멸을 부추기는 악순환이 된 셈입니다.

[김동래/김제시 요촌동 : "(빈집에) 학생들이 날마다 와서 술을, 저기서 여기까지 술병이 있고 그런 난리가 없었어요. 우리 집 아이들이 여기서 살지 말고 이사를 가라고 그래요, 다른 데로."]

오랜 골칫거리였던 이 빈집들은 최근 김제시가 집주인들을 설득해 철거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차로 5분 거리, 또 다른 '고위험 빈집'은 사정이 다릅니다.

사람 다니던 대문 앞은 대나무 숲이 가로막았고, 뿌리가 마당 속을 헤집고 퍼져 방 안으로까지 솟구쳤습니다.

사람 손길이 끊긴 지 20년, 붕괴 위험은 날로 커지지만, 앞선 곳들과 달리 철거가 쉽지 않습니다.

[김제시 관계자/음성변조 : "건축주 파악이 어려워서 아직 손을 못 대고 있는 상태예요. 그래서 (직권 철거를) 하려면 건축심의라든가 각종 고시 공고들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데 아직 그 부분들이 명확하지 않아서…."]

지난해 '빈집특례법'이 바뀌면서 이행강제금 부과와 직권 철거 같은 권한을 지자체가 갖게 됐습니다.

문제는 실효성입니다.

화재나 붕괴 위험이 크다면 지자체가 나서 철거할 수 있지만, 행정 절차만 1년 넘게 걸리고 비용도 부담입니다.

사실상 집주인 허락 없인 아무리 고위험 빈집이라도 손대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김준영/전주대 건축학과 교수 : "현실적으로 개인 재산에 대한 침해 논란이 있을 수 있어서 (지자체가) 집행에 매우 소극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고위험 빈집을) 공공자산으로써 경관으로 볼 수 있는 관점이 시민들 사이에 확대돼야…."]

사람이 떠나며 남긴 빈집, 빈집은 또 사람들을 떠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빨라지는 지방소멸의 시계를 멈추려면 빈집 문제를 해결할 더 적극적인 제도를 고민해야 합니다.

KBS 뉴스 오정현입니다.

촬영기자:한문현/그래픽:전현정
https://news.kbs.co.kr/special/danuri/2022/intro.html

오정현 기자 (ohh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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