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발 물러난 네타냐후 “내전 피하려 사법개편안 입법 연기”

선명수 기자 2023. 3. 2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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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야당과 협상 시간은 벌어…입장 차 커 타협 난망
“국민 분노 가라앉히는 데 역부족”…미국 압력도 부담

사법부 무력화 입법을 추진하다 거센 국민적 저항에 부딪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27일(현지시간) 결국 ‘입법 연기’를 선언하며 한발 물러섰다. 공개적으로 입법 중단을 촉구한 요아브 갈란트 국방부 장관을 해임하며 전국적으로 시위가 격화되기 시작한 지 하루 만이다. 그러나 사법개편안의 ‘폐기’가 아닌 ‘연기’를 선언했다는 점에서 여전히 갈등의 불씨는 남아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TV로 생중계된 대국민 연설에서 “국가 분열을 방지하고 폭넓은 합의를 이뤄내기 위해 사법개편안에 대한 2·3차 독회(讀會)는 의회 휴회 이후로 연기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조치가 “(야권과의) 대화를 위한 타임아웃”이라며 “내전을 피하는 기회”라고 밝혔다. 날로 거세지는 국민적 저항과 내각의 반발, 최대 우방 미국의 경고 카드에 결국 백기를 든 것이다.

지난해 말 출범한 이스라엘 극우 연정은 사법부의 권한을 축소하고 법관 인사를 의회가 주무를 수 있는 사법개편안을 추진해 왔다. 대법원 판결을 의회 단순과반 의결로 무력화하고 법관선정위원회 구성을 변경해 정부·여당 추천인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이에 반발한 야당과 법조계, 시민사회는 이를 ‘사법 쿠데타’로 규정하고 12주째 격렬한 반대 시위를 벌여왔다.

5월 초에 시작되는 다음 회기까지 야권과의 협상을 위한 시간은 벌어뒀지만, 법안에 대한 입장 차가 워낙 커 타협안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극우 및 유대교 정당들과 손잡고 지난해 말 재집권한 네타냐후 총리는 사법부를 약화시키려는 극우 연정 파트너와 이에 대한 국민적 분노 사이에 낀 처지가 됐다. 싱크탱크 이스라엘 민주주의연구소의 요하난 플레스너 대표는 “(네타냐후 총리의 발표는) ‘평화협정’이라기보다는 ‘휴전’에 가깝다”며 “위기가 끝났다고 말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연정 내 대표적인 극우 인사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입법이 중단될 경우 연정에서 탈퇴하겠다는 뜻을 한때 거론하기도 했다. 반면 야권과 시민사회는 입법 보류가 아니라 법안 자체를 폐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야권 지도자인 야이르 라피드 전 총리는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사법개편안의 완전한 중단을 내걸었다.

정치 분석가들과 외신들은 당장 우파 연정이 깨지지는 않겠지만, 연정 내 극우세력과 유대교 기반 정당들이 사법부 무력화 입법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정치적 불안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레츠는 “출범한 지 채 3개월도 되지 않은 연정은 당분간 유지될 수 있다”며 “그러나 이들의 연합은 심각하게 약화됐다”고 분석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네타냐후와 극우·종교적 보수주의자 연합은 다음 위기가 올 때까지 비틀거릴 것”이라며 “4월 휴회 후 네타냐후 총리가 사법개편안을 철회한다면 그는 의회에서 다수당을 확보한 극우 정당과 돌이킬 수 없는 결별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남은 한 달 남짓의 시간 동안 협상이 결렬된다면 입법부와 사법부가 대립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달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야권과 협상이 결렬돼 입법이 진행되면 대법원이 이를 파기해 정부 부처 간 대결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며 “이 경우 보안군이 어떻게 대응할지가 중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입법을 연기했다고 불타오른 민심이 잦아들지도 미지수다. 타미르 하이만 이스라엘 국가안보연구소 이사는 “입법 연기만으로는 시민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 역부족”이라며 “네타냐후 총리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법개편안 추진을 완전히 중단한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한 시위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이스라엘의 최대 우방인 조 바이든 미 행정부와의 관계도 경색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NYT는 네타냐후 총리가 미국의 공개 경고에 떠밀린 듯 입법 연기를 발표하자 워싱턴 정가의 관심이 네타냐후 정권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로 옮겨가고 있다고 전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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